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금오신화' 쓴 김시습의 자취 곳곳에

우먼타임스 = 박상주 편집국장

경주를 떠 올리면 왜 자꾸 ‘신라의 달밤’ 이라는 노래가 생각날까요? 나도 모르게 “아아~, 신라의 밤이여~”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유별나게 현인 선생의 노래를 좋아하기는 합니다. ‘신라의 달밤’과 ‘굳세어라 금순아’, ‘비내리는 고모령’ 등 현인의 노래들이 나의 애창곡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특정 장소와 애창곡 사이에 무의식의 연상작용이 작동하는 걸까요?

경주 남산 산행을 가는 길입니다. 신경주역에 내렸습니다. 아침나절인데도 ‘신라의 달밤’이 떠오릅니다. 현인 선생 특유의 비브라토 창법으로 부르는 ‘신라의 달밤’은 참으로 구수하지요. 1절만 소개해 드릴까요?

“아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금오산은 남산의 다른 이름입니다. 금오산은 경주 시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금빛 자라 형상입니다. 황금 ‘금(金)’에 자라 ‘오(鰲)’를 써서 금오산이라고도 부릅니다. 금오산을 남산이라고 하는 이유는 경주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남산으로 갑니다. 남산은 석가모니 부처가 머무는 ‘영산(靈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산은 금오봉(해발 468m)과 금오봉(494m)을 두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사이 40여 개의 계곡엔 150여 곳의 절터, 120여 구의 석불, 10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합니다. 남산을 오르는 일은 산행이라기보다는 유적탐방입니다. 남산 자체가 거대한 ‘지붕 없는 박물관’입니다. 1968년 12월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로 지정되었지요.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삼릉에서 내렸습니다. 삼릉탐방지원센터~석조여래좌상~바둑바위~금오봉~용장사지~설잠교~용장골주차장 7킬로미터 산행을 했습니다. 신라 유적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남산은 다른 산처럼 무심하게 휘적휘적 오를 수 없습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천년 유적들이 발걸음을 붙듭니다. 남산 산행은 천년 전 신라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입니다. 마애석불과 여래좌상 앞에서 절을 하고, 석탑에서 탑돌이를 하고, 각각의 안내 표지판을 읽으면서 갑니다. 산행이 더뎌집니다.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앞에 섰습니다. 부처님 표정에 천년의 고요와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의 곡선은 간결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신라인의 숨결과 손길이 느껴집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구석구석 박혀 있는 유적들을 따라 샛길을 들락날락하다가 이상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잡목을 헤치며 오릅니다. 눈가늠으로 능선 방향을 향해 길을 뚫습니다. 다행히 바둑바위로 연결되는 큰길을 만납니다.

바둑바위에 올랐습니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곳입니다. 어른 수십 명이 올라도 넉넉할 만한 넓이의 바위입니다. 

시야가 툭 터집니다. 천년 고도 경주 ‘서라벌’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서라벌은 동해에서 솟아오른 태양이 가장 먼저 그 빛을 비춰 주는 새 벌판입니다. 서라벌은 남산과 토함산, 선도산, 단석산 등으로 둘러싸인 길쭉한 벌판입니다. 불국사와 석굴암, 양동마을, 경주역사유적지구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도시입니다.

경주의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중학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었습니다. 당시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포석정, 황룡사지 등을 둘러보던 기억이 낡은 흑백사진의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여행과 워크숍 등으로 몇 차례 경주 여행을 했지요. 경주는 ‘추억의 저장고’입니다. 

추억을 씹으며 걷습니다. 동네 약수터 가는 길처럼 편안하고 넓은 길입니다. 넓은 공터가 나타납니다. 남산의 정상인 금오봉입니다.

공터 한 편에 ‘남산과 망산의 유래’라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볼까요? 

옛날 서라벌에 두 신이 찾아왔습니다. 두 신은 서라벌의 경치를 둘러보고는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로구나!” 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한 처녀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녀는 천둥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산처럼 거대한 두 남녀가 걸어 오고 있었다. 겁에 질린 처녀는 “산 봐라!”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두 신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면서 산이 되었습니다. 남신은 우람한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의 아담한 망산이 되었습니다. 

용장골 방면으로 하산을 합니다. 30여 분 걸었을까요? 단아한 자태의 탑 하나가 산 기슭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보물 제 186호인 용장사곡 삼층석탑 입니다. 검은 암반에 발을 디딘 채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삼층석탑이 신비롭게 보입니다. 

몇 걸음 더 옮기니 보물 187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이 산객을 반깁니다. 석조여래 부처님이 자연 암반 기단 위에 원반형 돌을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든 대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석조여래좌상은 안타깝게도 그 머리를 잃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이 용장사에 머물던 시절에는 석조여래좌상 머리가 있었을까요? 뜬금없이 웬 김시습이냐고요?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용장사였습니다. 

김시습은 20대 초반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납니다. 울분을 느낀 김시습은 서책을 모조리 불태운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법명은 설잠(雪岑). 

승려가 된 김시습은 세상을 유랑합니다. 금강산과 묘향산, 오대산, 다도해를 돕니다. 그러던 중 효령대군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돕기도 했지만 다시 한양을 등집니다. 세상을 떠돌던 김시습은 경주 남산 용장사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습니다. 금오산실의 당호가 바로 매월당입니다. 금오산실에서 금오신화와 산거백영(山居百詠) 등 숱한 역작들이 탄생했습니다.

왜 굳이 경주였을까요? 세상 유랑을 하던 김시습이 불국사의 종소리가 듣고 아예 걸음을 멈추었던 걸까요? 왜 굳이 남산이었을까요? 고요한 달빛 아래 금오산 기슭을 걸으면서 시 한 수 읊다가 아예 주저 앉기라도 한 걸까요?

무심결에 현인의 노래 ‘신라의 달밤’을 다시 흥얼거립니다. “아아~ 신라의 밤이여~.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온다~.” 혹시 달이라도 떴느냐고요? 아직 해가 중천입니다. 이제 불국사와 석굴암을 둘러 볼 생각입니다. 오늘 밤 서라벌 하늘에 휘영청 달이라도 떴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우먼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