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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100대명산 ① 지리산 화대종주] 한반도 엉덩이뼈' 더듬는 50km 대장정

화엄사~대원사 2박3일 동안 지리산 품에
피 맺힌 사연 품은 단풍, 핏빛으로 타올라

  • 기사입력 2022.11.24 16:08
  • 최종수정 2023.02.01 10:03

 우먼타임스 = 박상주 편집국장

산에 왜 가지요? 산은 ‘쉼표’이기 때문입니다. 산은 ‘충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100대 명산은 약효가 뛰어난 ‘보약’입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100대명산으로 함께 떠나보실까요? <편집자 주>

지리산은 ‘한반도의 엉덩이뼈’입니다. 둘레 300여 킬로미터, 횡단거리 50여 킬로미터의 거대한 산입니다. 최고봉인 해발 1,915미터의 천왕봉을 위시해 1,400미터 이상의 봉우리만 20여개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계곡이 70여개나 됩니다. 높고 깊고 넓은 산입니다. 

서쪽 끝 자락에 화엄사가 있습니다. 동쪽 끝 자락엔 대원사가 있습니다. 화엄사~대원사 간 50여 킬로미터 지리산 산행을 화대종주라고 합니다. 진짜배기 지리산 종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벼르고 벼르던 화대종주에 나섰습니다. 벽소령대피소와 치밭목 대피소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2박3일 동안 지리산 품에 안깁니다. 

첫째 날 일정은 화엄사에서 출발을 해 연기암~코재~무넹기~노고단~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연화천대피소를 거쳐 벽소령 대피소까지 가는 21킬로미터 코스입니다. 

먼저 새벽 운무에 잠긴 화엄사를 둘러봅니다. 일주문을 지나니 눈을 가린 부처님과 귀를 가린 부처님, 입을 가린 부처님 좌상이 나란히 중생들을 맞이 하십니다. 부처님들의 좌대에 법구경의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눈을 가린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귀를 가린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불문(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입을 가린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경내를 돌아봅니다. 화엄사는 각황전(국보67호)과 그 앞의 석등(국보12호), 그 뒤편 언덕의 사사자 삼층석탑(국보35호), 동 오층석탑(보물 132호), 서 오층석탑(보물 133호) 등 국보와 보물로 가득한 천년고찰입니다. 

화엄사를 벗어나 산을 오릅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고개에 이르는 7킬로미터는 지리산의 다른 코스에 비해 힘든 구간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특히 코재 오르막은 이름 그대로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릅니다. 대학 시절 숨을 몰아쉬면서 힘들게 코재를 오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일까요? 그렇게 힘들게 올랐던 화엄사 계곡을 이번에는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가뿐하게 올랐습니다. 물론 배낭이 예전에 비해 훨씬 가볍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피소에서 햇반을 팔기 때문에 3일치 쌀을 져서 나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수월했습니다. 아무래도 매 주말 100대 명산을 오르면서 다져진 근력 덕일 것입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햇반을 사서 점심을 먹습니다. 반찬은 멸치볶음과 깻잎 장아찌 뿐이지만 꿀맛!

다시 길을 나섭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 턱밑인 장터목에 이르는 20여 킬로미터의 능선길은 해발1,400~1,700미터 대를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지리산의 가장 큰 미덕은 부드러운 능선길입니다. 설악산의 능선은 공룡의 등처럼 사납지만, 지리산의 능선은 소 잔등처럼 순하기만 합니다. 

천하제일의 물맛을 자랑한다는 임걸령샘에서 목을 축입니다. 삼남지방을 무대로 활동을 하던 의적 임걸령이 물을 마셨다는 곳입니다. 계곡마다 물이 철철 흐르고 여기저기 샘이 콸콜 솟는다는 점도 지리산의 미덕 중 하나입니다. 

임걸령 뿐 아니라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등 정상부 곳곳에서도 사시사철 물이 솟구칩니다. 설악산이나 한라산, 덕유산, 월악산 등 다른 큰 산들을 등반할 땐 반드시 물을 넉넉히 챙겨야 하지만 지리산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느긋하게 걸었나 봅니다. 연하천 대피소에 닿으니 해가 집니다. 연하천 대피소는 증개축 공사중이어서 운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11월 재개장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잠자리를 예약해 놓은 벽소령 대피소까지 3.6킬로미터를 더 가야 합니다. 야간 산행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때마침 벽소령 대피소에서 전화가 걸려 옵니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예약자가 도착을 하지 않으니 소재를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벽소령 대피소 직원이 야간산행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묵을 수 있도록 연락을 해 놓겠다고 말합니다. 벽소령 대피소 직원과 통화를 마친 후 연하천 대피소의 문을 두드리니 방을 내 줍니다. 연하천 대피소를 통째로 빌린 ‘황제 투숙’이었습니다. 벽소령과 연하천 대피소 관계자께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길을 나섭니다. 세석평전~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뒤 중봉~써리봉을 찍고 치밭목 대피소까지 가는 20여 킬로미터의 일정입니다. 

한 줄기 헤드 랜턴 불빛이 두터운 어둠을 뚫습니다. 새소리 벌레소리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 속을 걷습니다. 

1시간 여 걸었을까요? 동녘이 훤해지더니 지리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지리산의 검은 영봉들이 하얀 운해 속에 잠겨 있습니다. 조물주만이 그려낼 수 있는 한 폭의 수묵화가 발 아래 펼쳐집니다.

날이 밝으면서 수묵화는 수채화로 바뀝니다. 빠알간 단풍들이 산록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지리산 단풍 예찬으로 말하자면 조선 중기의 거유인 조식(曺植)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리산에 반해 호를 지리산 사람이라는 뜻의 방장산인(方丈山人)으로 택했던 조식은 벼슬도 마다한 채 지리산에 틀어박혀  학문에만 매진했습니다.  조식은 피아골 삼홍소(三紅沼) 단풍을 둘러본 뒤 이렇게 읊었습니다.

秋日與友登智異(추일여우등지리)
山紅水紅人心紅(산홍수홍인심홍)
昨來春今過滿秋(작래춘금과만추)
何時何處想如夢(하시하처상여몽)

가을날 벗과 함께 지리산에 오르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 마음도 붉네
어제 봄이 왔다 했는데 오늘 만추가 지나가네
언제 어디서 꿈처럼 또 생각이 날까.

지리산 단풍은 피를 머금어 더 붉다고 말합니다.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마지막 투쟁을 했던 동학군과 의병과 빨치산들이 흘린 피입니다. 박경리의 ‘토지’와 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그 길고 긴 이야기로도 다 풀어내지 못한 피맺힌 사연들을 해마다 핏빛 단풍으로 피워 올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석 대피소에서 미숫가루로 요기를 하면서 숨을 돌립니다. 다시 걷습니다. 오락가락하는 운무에 영봉들이 숨바꼭질을 합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햇반을 사서 점심을 먹습니다. 밥심으로 천왕봉에 오릅니다. 가파른 오르막 1.7킬로미터를 50여 분 만에 잡아챘습니다.

천왕봉은 해발 1,915미터입니다. 남한의 뭍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치달리는 백두대간의 우뚝한 마침표가 바로 천왕봉입니다.

천왕봉에 올라 지리산을 굽어봅니다. 산맥이 까마득하게 달립니다. 산자락이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널찍하게 펼쳐집니다. 

지리산은 ‘어머니 산’입니다. 지리산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 흙을 만지며 살고 싶은 귀농인, 자연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예술가, 세파에 지친 사람들 등 그 자락으로 찾아 드는 모든 이들을 넉넉히 품어줍니다. 

해가 지기 전에 오늘 잠자리인 치밭목 대피소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천왕봉에서 중봉과 써리봉을 넘어 치밭목 대피소에 이르는 4킬로미터는 지리산 등산로 중 가장 험한 코스입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합니다. 거친 돌뿌리들이 널려 있는 길입니다. 인공적으로 크게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어둠이 밀려 옵니다.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멀리 불빛이 반짝입니다. 치밭목 대피소입니다. 오늘 밤도 지리산의 품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됐습니다. 

대피소 앞 테이블에서 저녁을 준비를 합니다. 햄 한 통을 굽고 인스턴트 된장 한봉지를 풀어 넣고 국을 끓입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분들이 어묵 한 사발을 건네 줍니다. 햇반에 찬이 세가지나 되니 그야말로 성찬입니다. 하늘엔 별이 반짝입니다. 낮 동안 하늘을 덮었던 구름은 어느 새 물러갔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7시쯤 기상을 했습니다. 미숫가루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뒤 길을 나섭니다. 찬 바람이 무척 거세게 붑니다. 그래도 오늘은 대원사 주차장까지 10킬로미터만 가면 됩니다. 계곡으로 내려서니 숲이 바람을 막아줍니다. 아늑한 숲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여러 해 전 뱀사골 계곡으로 올라 장터목 대피소에서 자고 천왕봉에 오른 뒤 대원사골로 하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처럼 지루하고 힘들기만 하던 길이었습니다. 오늘은 대원사 계곡과 교감을 하면서 편안하게 걷습니다. 

무탈하게 화엄사~대원사 간 50킬로미터 화대종주를 마쳤습니다. 지리산과 설악산과 덕유산 산신령님들이 허락하시고 품어 주신 덕분입니다. 몸을 단련하고 마음을 닦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화대종주를 한 번 쯤 더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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