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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짧은 치마를 입지 못하는 사연

권혁란 저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 기사입력 2022.11.14 13:54
  • 최종수정 2022.11.15 10:15

몇 해 전부터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치마만 입고 있다. 나이나 외모 때문은 아니고 그 무렵부터 가을, 겨울에 짧은 옷을 입으면 무릎뼈 사이로 바람이 새듯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무렵이면 무릎이 구부정하니 잘 펴지지 않았다.

그럴 때면 집에 돌아와 찜질팩으로 무릎을 달래줘야 걷기 수월했다. 사실 신체라는 게 일종의 소모품 아닌가. 아쉽긴 했지만 짧은 하의는 중고거래 앱에서 전부 나눔을 했고, 이후 무릎을 덮는 긴 치마와 긴 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리고 이같은 패션의 변화를 반겨준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주변 어르신들이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긴 치마만 입기 시작한 내게 기다렸다는 듯 칭찬을 하기 시작한 거였다. 

“진작에 이렇게 입고 다니지 그랬니.”
“결혼한 여자가 무릎 드러내고 그러는 거 아니다.”
“나이 먹고 짧은 거 입으면 흉하지. 앞으로 이렇게 입고 다니도록 해.”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던 내가 영 마뜩잖았던 걸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결혼하고 나이든 여자가 짧은 옷을 입으면 흉한 것처럼 생각하는 어르신들의 말에 속이 상했다. 나는 나이를 먹었어도 자유롭게 입고 싶고, 최선을 다해 예쁜 옷을 고르고 싶다. 

더 나아가 결혼과 관계없이 내내 섹시하고 싱그러운 사람이고 싶다. 나이가 든다 해서 점잔빼는 옷만 걸치기를 원치 않는다. 내 나이가 몇이든 스스로 만족스러운 차림새를 하고 싶고, 그 차림새란 나의 매력을 최대치로 만들고 싶은 도구 중 하나다. 나이가 들어 짧은 옷을 입으면 흉한 게 아니라 건강한 거라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내 무릎이 건강치 못해 짧은 옷을 입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권혁란 저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낮은산)
권혁란 저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낮은산)

권혁란 작가의 책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를 보면 여성의 성(性)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여성의 성姓, 돈, 집, 성性, 일, 피, 연緣, 밥, 욕, 독獨을 주제로 여성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여성의 생식기는 오랫동안 숭배 아니면 혐오의 대상이었다. 더불어 여자의 성욕은, 더군다나 엄마의 성욕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부터가 그랬다. 출산하고, 양육하고, 나이가 좀 들면 성적인 욕망은 내려놓고 그저 조용히 사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 흰 눈 치켜뜨고 모르는 척 제쳐 놨다." - 89p”

여기서 성(性) 챕터를 읽을 때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별자리 북두칠성 설화 속 엄마와 아들들의 이야기였다. 한 과부가 일곱 아들을 어렵게 키우고 있는데 엄마가 밤마다 나가서 홀아비를 만나고 오는 걸 아들들이 알게 됐다. 그러자 아들들은 엄마가 행여나 깊은 개울을 건너다 몸을 다칠까 봐 개울물 속에 엎드려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엄마는 밤마다 아들들 몸으로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홀아비를 만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다. 훗날 아들들은 엄마의 기도대로 하늘의 일곱별, 북두칠성이 된다. 

우리나라 설화 중에 이처럼 여성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한 이야기가 또 있었던가? 남편 없이 외로운 엄마의 성생활을 도와주는 기특한 아들들의 이야기라니, 정말 드문 설화다. 또 이 설화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결혼하고 나이 들고 자녀를 둔 엄마라 해도 개인의 욕망이나 성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설화에서는 아들을 무려 일곱 명이나 낳은 엄마지만 한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욕망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 있다. 성욕이 있고 정인을 만나 교류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밤에 개울을 건널 만큼 열정도 있다.

설화에서는 이처럼 한 개인을 존중하지만, 현시대에서는 나이 들고 아이 낳은 유부녀를 마치 무성의 존재인 듯 재단하고 점검하는 시선이 분명 존재한다. 한편 남성이 ‘아저씨’가 된다 해서 옷차림을 점검하고 성욕이 사라지는 존재로 재단한 적이 없다는 건 또 미스테리하다.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의 성(性) 챕터 마지막에는 몹시 공감 가는 메시지가 적혀있다. 비록 무릎이 시려 짧은 치마를 못 입는 나지만 거기에 얌전한 무성의 존재처럼 살고 싶다는 뜻은 결코 없었다. 마지막 구절이 너무나 좋아서 두 번, 세 번 읽어본 뒤 여기에도 옮겨 적어본다. 

“아이를 낳았든 안 낳았든, 젊든 나이 들었든, 성적 욕망의 크기와 양상은 여자마다 다를 터. 갈래갈래 복잡하게 펼쳐지고 저마다 다르게 생긴 성기 모양처럼 여자들이 자신의 성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발휘하기를. 각자 자신에게 맞는 징검다리를 만들어 성큼성큼 뜨거운 욕정을 향해 달려 나가기를! - 89p”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엄마가 되어서야 체감하게 된 여성을 향한 또 다른 혐오와 이중 기준에 관한 신랄하고 통쾌한 보고서이다.

[저자 권혁란]

언제나 여자들의 이야기에 골몰해 왔다. 여자아이, 딸, 엄마, 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자들 삶의 경로에 깊은 관심이 있다. <트래블 테라피>,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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