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 발표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수정하라는 의견 수용 안해
윤석열 정권 입장과 배치돼 논란 예상
공청회 후 2차 의견수렴해 최종 결정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그 차이는 무엇일까. 한 글자가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한 글자를 넣고 빼는 걸 두고 두 집단이 왜 이리 다투고 있을까. 

이 논란이 도덕교과서까지 번졌다. 교육부는 그러나 일단 ‘성평등’ 손을 들어주었다.

정부가 2022 개정 초중등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는 가운데 도덕 교과 시안에서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양성평등’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으나 ‘성평등’ 표현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교육부는 27일 도덕 교과를 집필하는 정책연구진이 ‘성평등’ 문구를 유지한 공청회 시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도덕 교과 정책연구진은 가치를 지향하는 도덕 교과 특성을 고려해 성평등 용어를 그대로 유지한 안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입장은 ‘성평등’ 용어를 문제 삼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과는 모순된다. 그래서 최종 결정 과정에서 '성평등' 용어가 그대로 고수될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앞서 교육부는 새 교육과정 초안을 온라인 ‘국민참여소통채널’ 홈페이지에 공개해 의견을 받고, 이를 각 교과를 개발하는 정책연구진에게 전달해 면밀한 검토를 거칠 것을 요청했다.

온라인 공론화 과정에서 도덕 등 교과에서는 ‘성평등’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시안에 담겨 있지는 않으나 “인권 관련 지도 시 동성애, 성전환, 낙태 등의 사례가 포함되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성평등’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은 이 용어가 성전환이나 제3의 성을 인정한 것이므로 남녀의 존재만 인정한 ‘양성평등’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 교과 국민공청회는 28일 한국교원대 교육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데 성 문제에 대해 진보와 보수 측 입장을 지닌 참여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성 관련 수정·보완 요구는 도덕, 보건, 사회 등 여러 교과에서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최종안은 공청회와 2차 의견수렴,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쟁점사항을 조정한 후 11월 국가교육위원회가 결정한다.

[성평등과 양성평등]

‘성평등’과 ‘양성평등’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성평등은 현대사회에서 꼭 남자와 여자가 아닌 다양한 성이 존재하는 만큼 모든 성을 평등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양성평등’은 성을 오로지 남자와 여자 두 개로 구분한다. 동성애나 성전환,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 단체가 그 중심에 있다. 여성·인권단체들은 이 용어 자체가 성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의식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4월 7일 여성단체들이 서울 고궁박물관 인근에서 성평등 부처 확대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월 7일 여성단체들이 서울 고궁박물관 인근에서 성평등 부처 확대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9월 15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보수 학부모 단체들이 교육청의 ‘성평등 주간행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 15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보수 학부모 단체들이 교육청의 ‘성평등 주간행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6월 30일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성평등’으로 바꾸자는 게 핵심이다.

권 의원 등 발의자 20명은 개정안 발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양성평등’ 정책 내용 및 집행에 있어서 ‘생물학적 성별(sex)’에 따른 남녀 이분법에 기초해 기계적이고 양적인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일부 보수단체 등은 성소수자 인권보호 배제를 주장하는 등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성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양성평등 정책 운용은 남성 역차별 주장 및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맞물려 오히려 성별 고정관념과 여성과 남성 간의 대결·대칭 구도를 강화해 여성 및 성평등 정책 전반을 후퇴시키고 있다.”

‘성평등’ 용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성별에 따른 차별 근절을 위한 정책은 젠더 관점에 입각해 성별 권력관계에 따른 구조화된 불평등 문제를 다루어야 하므로 ‘성평등’ 용어를 쓰는 게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유엔과 OECD 등 국제기구에서도 ‘성평등(Gender Equality)’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건사연) 등은 이 개정안 발의에 대해 “제3의 성을 법으로 인정하게 하려는 추악한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규탄했다.

건사연은 “이들의 끈질긴 노력은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되고 있다”며 “그 목적은 결국 다양한 성의 인정을 통한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는 ‘성평등’보다 ‘양성평등’]

여성가족부가 2019년부터 벌여온 청년 성평등문화 운동 ‘버터나이프크루’가 올해 폐지됐다.

‘버터나이프크루’는 성평등한 미래를 만드는 데 관심 있는 2030 세대 청년 3명 이상이 팀을 이뤄 여가부의 사업비 지원을 받아 연구와 캠페인, 콘텐츠 제작 활동을 하는 조직이다. 올해 제4기 추진단이 63명으로 구성됐다.

‘버터나이프크루’(Butter knife crew)는 버터를 나이프로 잘라 먹는 것처럼 일상에서 참여를 통해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다.

이 사업이 갑자기 폐지된 과정을 보면 윤석열 정권의 젠더의식을 읽을 수 있다.

부처 폐지 대상에 오른 여가부가 7월 이 사업을 한다고 발표하자 권성동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가 갑자기 페이스북에 이 사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권 전 대표는 “이 사업은 남녀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고, 지원 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 국가가 노골적으로 특정 이념을 지원해서는 안 되고, 새 정부의 여가부 폐지 기조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도한 페미니즘은 남녀갈등의 원인 중 하나다. 남녀갈등을 완화한다면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순”이라고까지 말했다.

여권 실세가 이런 비판을 내놓자 김현숙 여가부장관은 4기 추진단이 출범한 지 5일 만인 7월 5일 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사실상 폐지됐다. 김 장관은 “버터나이프크루는 젠더 화합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성평등’ 용어가 실종된 사례는 또 있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매년 9월 1일부터 1주일간을 양성평등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기념행사를 해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인 올해 양성평등주간에서 ‘성평등’이란 용어는 ‘양성평등’으로 바뀌거나 사라졌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인사청문회부터 이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 단어를 고수했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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