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은 저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얼마 전 평생 몇 번 겪어보지 못했던 폭우가 들이닥쳤다. 정말 질리도록 내렸다. 강아지와 우비를 입고 잠시 집 앞에 나갔다가 빗줄기가 너무 아파서 스무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지독한 비가 수해로 이어질 거라 생각도 못했다. 

그날 저녁 무렵, 카톡이 종종 울렸다. 물에 잠긴 길과 집의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어느 취미 모임의 방에도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다. 

“OO언니, 이 동네 살지 않아요? 괜찮아요?”

내가 알기에 OO언니의 동네는 전원주택과 단층 주택이 모여있는 단지였다. 물에 잠긴 사진이 바로 그 동네였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수해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고, OO언니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인지 OO언니의 집은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강한 바람에 지붕이 뒤집히는 참사가 벌어졌다. OO언니는 다음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는데 우리에게 모임 참석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평소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에게 재해가 찾아왔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 복구에 참여하고 필요한 부분을 기꺼이 내어줄 의향이 있었다. 경조사가 생긴다면 당연히 참석해 인연을 담금질할 것이고, 나눠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은 언제든 함께 소비할 의향도 있는 것이다. 

살면서 경험하는 대인관계의 대부분은 이렇게 돈독하게 다져왔다. 때문에 ‘여적여’ 구도는 지금도 와닿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의 적이 되어야만 한다면 그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경쟁, 경계가 필요한 관계 아닐까?

조주은 저 ‘페미니스트라는 낙인’(민연)
조주은 저 ‘페미니스트라는 낙인’(민연)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의 저자 조주은 작가는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의 운영자다. 그는 이 모임을 통해 의리 있고 멋진 여성들을 만났다고 설명한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기도 한다. 

모임의 시작은 전국 초등학교에서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급식당번을 운영하는 제도의 문제의식이었다. 단지 여성이고 어머니란 이유로 노동력을 착취할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모성을 볼모로 한 노동력 착취’인 급식당번 관행을 공식적으로 문제화해 없애기 위한 모임이었다. 

모임의 이름에 들어있는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라는 단어에서 어쩐지 억척스러운 시위를 연상하고 무서운 여자들, 역시 아줌마 등의 편견에 사로잡히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임에서는 상대방의 경험에서 배우고 서로를 염려하고 안부를 물으며 즐겁게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 운동을 했다.

“온갖 차별과 부정의로 얼룩진 정부와 국가를 상대로 여성들을 위해 앞장서는 그녀들에게서 가슴 뛰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말뿐인 자매애가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주는 허약한 자매애가 아니라 실제 가족 관계 안의 혈연 자매가 해주지 않는 것을 지원하는 자매애 맺기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 33P”

흔히들 여성들의 대화와 티타임에는 ‘수다’라는 말을 붙이곤 한다. 나는 수다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늘 대화라고 표현한다. 수다는 쓸데없이 말수가 많은 것을 말하는데, 나와 내 지인들은 쓸데없는 말을 길게 늘이는 게 아니라 자기표현을 위한 대화를 한다고 믿는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적이 아니다. 서로의 표현을 존중하고 이해한다. 뜻하지 않은 사건과 재해가 벌어지면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한다.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부조리에 흠칫하며 함께 해결책을 강구하기도 하고, 차별하지 않는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한다. 그 따뜻한 연대가 모여 세상의 기울기를 평평하게 다져나간다. 그 안에 속해있는 나 역시 적이 없는 여성의 세계에서 어떤 연대를 만들어 나갈지 항상 골몰하게 된다. 

“휴머니스트를 자칭하는 이들은 많지만, 페미니즘을 전제하지 않고는 온전한 휴머니스트는 존재할 수 없다. 진짜 페미니스트여야 성립 가능한 휴머니스트는 여성들을 비난하지 않는 자다. - 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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