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 연희.”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오랜 세월을 건너온다.

딱 일 주일 전이었다. 9월 들어 내가 다녔던 대학을 매주 오갈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가 본 학교는 많이 변했다. 교정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건물이 새로 지은 간호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친했던 후배의 이름을 발견했다. 아,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었구나.

가방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내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밤이 늦어 안내대에 사람이 없어 방문자 명단을 적는 곳에 쪽지를 올려 두고 왔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거의 30년 만이었다. 전화를 끊으며 이렇게도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싶었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던 그 시절, 후배나 나나 둘 다 새로 시작한 직장 생활을 힘들어 했다. 빈틈없이 아귀가 맞게 돌아가야 하는 병원 일이 벅찼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어려웠고, 같이 일하는 의사들과 병원 직원들과도 부대낌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교대 근무 시간표에서 겨우 시간을 맞춰 만나 서로의 처지를 하소연했었다. 내가 먼저 결혼하고, 임신을 하고 병원을 그만두고 이사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그 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몇십 년이 지난 거다. 살아오면서 문득 생각이 나기도 했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명동 거리, 어쩌다 그곳에 가면 후배 생각이 났다. 3호선 충무로역도 그녀를 떠오르게 했다. 우리가 일하던 병원이 근처에 있었다.

어제 저녁 후배를 만났다. 중앙도서관에서 내려오는 긴 계단 아래 서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건물 앞 등나무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수업 끝내고 밥을 먹으러 가던 젊은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졌다. 건물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도.

후배가 나를 보고 웃는다. 나도 웃는다. 우리는 스스럼없이 손을 잡았고 서로를 안고 순식간에 오래 만나지 못했던 시간 건너 마주했다. (30년 만의 뜨거운 해후도 마스크를 벗겨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학교 앞 여러 갈래로 갈라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식당 낡은 의자에 앉아 대구탕과 밥을 먹었다. 우린 젊어서 같이 먹은 적이 없는 음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둘 다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살아내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고마웠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면서 손을 꼭 잡고 자주 보자는 인사를 나누었다. 무탈하게 건강하니 이렇게 다시 만나는 거라고 계속 건강히 지내라고 덕담도 주고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면서 만나고 헤어졌던 여러 얼굴이 스쳐 갔다. 연락해야지 미루다가 영원히 놓쳐버린 인연이 떠올랐다. 생각났을 때 연락하지 않아 아픈 것도 몰랐고 결국은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이 미안하고 슬펐다.

지난 몇 년 동안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는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생각났다. 언젠가는 그 사람을 만나 마주 앉아 같이 밥을 먹고 싶다. 얼마 전에 그분께 ‘우리 십 년 뒤에 꼭 만나요. 만나서 밥 먹어요.’라는 엉뚱한 문자를 보냈었다. 그분은 그전에 만날 수도 있다는 반가운 답장을 주셨다. 십 년이라는 시간을 견디며 즐기며 살아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같이 밥을 먹을 생각에 미리 가슴이 뜨거워졌다.

오늘 밤 삽상한 바람이 분다고 전화를 준 사람의 들뜬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건강하게 잘 살아서 인연을 길게 이어갈 수 있기를, 별일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웃으며 다정하게 만날 수 있기를.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림처럼 푸른 초가을 밤, 가슴으로 달려드는 바람을 안으며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김환기의 이 그림 제목은 친구인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차용됐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유심초가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김환기의 이 그림 제목은 친구인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차용됐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유심초가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최희정은) 젊어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다 육아를 핑계로 그만두고 이십여 년을 딸과 아들을 키웠다. 오십이 코앞인 어느 날 ‘불현듯’ 내 이름으로 다시 살고 싶어 재취업을 했다. 지금은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곳저곳에 글을 쓴다. 돌봄과 글쓰기, 둘 다 마음으로 깊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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