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 저, ‘당신을 이어 말한다’ 

남편이 회사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대화하며 아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했단다. 그랬더니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괜찮으세요?”
“힘드시겠어요.”

남편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괜찮다고 답했다며 나의 칭찬을 갈구했다. 타인들이 뭐라든 나는 괜찮다고 선언한 것을 칭찬해달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잘한 게 있어야 칭찬도 할 수 있는데, 도대체 뭐를 잘한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랑 살고 있으니 고생이 많다고 해줘야 하나,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진 성차별을 매일 꼬집혀서 힘들겠다고 위로를 해줘야 하나. 오히려 괜찮냐, 힘들지 않냐고 위로한 남편의 동료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성차별에 동참하고 있음을 시인한 게 아닐까?

남녀의 갈등이 점점 거세지고 어린아이들조차 서로를 구분짓기하는 시대적 현실은 알고 있다. 양성평등은 이해한다면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배우자만큼은 페미니스트가 아니길 바라는 남성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저는 페미니즘이 불편해요.”라며 은근슬쩍 도망쳐 기울어진 운동장에 적응하는 여성이 많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이런 시대에 성평등을 이루자며,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경험을 쓰는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인기가 없고 비호감인지도 짐작은 간다. 나 역시 머릿속 꽃밭 같은 글만 쓰고, 사랑이 넘치고 세상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 심미주의 글만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쓴다고 해서 세상이 살아있는 꽃밭이 될까. 그건 살아있지 않은 공산품, 조화의 밭이다. 불편하고 마주하기 싫고 논쟁이 싫어서 외면한 차별은 언제든 나를 공격하고 흉터를 남길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말해야 한다. 남편의 주변 사람들이 피곤한 여자 취급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나는 말하고 싶다. 부족한 상식과 이념을 갖고 있지만 읽고 채우며 계속 쓰고 싶다. 대단한 권위를 갖거나 페미니스트로 유명세를 가진 적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말하며 지속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남편의 동료들이 괜찮냐고, 힘들지 않냐고 위로의 말을 하는 도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세상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말해야 한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동아시아)
당신을 이어 말한다(동아시아)

이길보라 다큐멘터리 감독이 쓴 <당신을 이어 말한다>는 장애학과 여성학의 언어로 글을 썼다. 청작장애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로서 세상을 만난 경험,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경험이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내가 평소 느낀 바와 같이 말랑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 데서 오는 감정을 털어놓는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자꾸만 무언가가 나를 멈춰 서게 한다. 발목을 잡는 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나의 글과 말이 아닐 것이다. 당신과 나의 다름이, 차이가 주는 풍성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되고 불평등이 되는 일,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했을 때 불편한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일, 성폭력 피해자·생존자의 용기 있는 고발과 연대의 메시지가 번번이 남성연대·사법부·정계 앞에서 부딪히는 일, 그들만의 공고한 리그와 그곳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 67P.”

이 책의 제목이 왜 <당신을 이어 말한다>여야 하는지는 아주 명확하다. 옳은 것을 옳게 말했을 때 누군가 얼굴색을 붉히고 모욕을 줘도 멈추지 않고 이어가야 한다는 의지다. 의도치 않게 피곤한 와이프가 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계속 해결되지 않는 차별을 걸러내 세상에 제시하고, 옳은지 그른지 구별조차 되지 않는 관념에 선을 그어야 한다. 

그렇게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상처를 예방하고, 내 남편이 남자로서 걸머지는 잘못된 인식을 덜어내야 한다. 그러니 계속 이어 말해야 한다. 더 많은 우리가 이어 말해야 한다.

“내가 하는 선언과 행동 위에 나중에 오는 이가 서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의문을 품고 용기를 내어 말하고 선언함으로써 우리는 지형을 바꿔 나간다. 당신과 나의 말하기는 판을 바꾸고 뒤집는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신을 이어 말한다. -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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