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전날, 오빠네 가려고 택시를 탔다. 소림이가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기사님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인사 고마워요, 꼬마 아가씨. 아이랑 다닐 땐 택시가 편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안 타고 살았는데 지금은 애용해요.”

더는 택시 타는 데 주저함 없다. 조건이 붙긴 한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 또는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치는 날 ‘소림이랑’ 외출해야 할 때’. 평소 택시비를 아끼는 나에게 이 조건은 정당한 이유로 작용한다. “제 딸도 비슷한 또래 아들을 키워요. 아이랑 외출할 땐 꼭 택시 타라고 일러뒀지요.” 기사님이 말을 이어갔다.

평소의 나는 택시만 타면 큰스님이 된다. 묵언수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사님이 거는 말에 무조건 “네” 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목적지까지 잔잔하게 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기사님은 어딘가 나의 아빠를 닮았다. 어느새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된 나. “택시를 타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날...”

나는 집순이다. 집에서 하는 모든 것이 재미있는 내게 출타 욕구는 거의 일지 않지만 완벽한 집순이도 제 한 몸일 때 얘기다. 시속 10km로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기를 바라보며 집순이는 달라질 미래를 예감한다. “아! 나가야겠구나.” 열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잡동사니를 끄집어내고 잡히는 것마다 입에 넣는 아기와 붙어 있기란, 밤새 술 퍼마시고 극장을 찾아 146분 동안 나오는 대화라고는 부녀가 나누는 몇 마디가 다인 ‘토리노의 말’을 완주하는 것보다 열아홉 배 정도 괴로운 일이다. (이 영화는 사실 걸작이다, 내 정신이 온전할 때만)

내겐 차가 없다. 전 남편이 차만 끌고 갔다. 차‘도’ 가져간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고, 그보다 더 다행은 임신 전 받았던 PT(케틀벨 스윙과 플랭크, 90kg짜리 역기로 데드리프트 하기 등)로 단련된 나의 코어 근육이 꽤 유용하단 사실이었다. 뚜벅이 싱글맘은 마동석이 되어야 한다. 음, 완벽해서 곤란해졌다. 서사에는 시련이 필요한 것을. 그렇지, 나의 오른쪽 무릎은 매우 부실하다.

소림이가 아기였을 때 등에는 배낭(기본적으로 챙길 아이 물건이 많다), 앞으로는 아기띠를 메고 동네 천변을 걸었다. 유아기에 들어서고는 버스로 열 정거장 거리에 있는 상암 월드컵공원에 곧잘 갔다.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뜀박질과 놀이터 탐험(놀이터 이름도 무려 ‘아기새의 모험’. 그래, 까짓거 떠나자고!)으로 발산시켜줘야 했다.

그날도 소림은 과연 말띠다웠다. 망아지처럼 월드컵공원을 뛰어다녔다. 나도 뛰어다녔다는 얘기다(세 살은 혼자 놀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을 모녀가 어느덧 어스름에 물들었다. “소림아, 땅거미 나타났다! 집으로 도망가자.” 세 살은 또한 무아지경으로 놀 때를 제외하고는 쉬이 걷지 않는다. 안아줘. 안아줘. 몇 걸음 걷다 멈춰선 아이가 내 손을 놓더니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응, 안아줄게.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배에 힘을 꽉 주고 아이를 들어 올렸다. 코어 힘이 풀리면 무릎에 무리가 와 한동안 앓게 되므로 신경 써서 걸어야 했다. 이내 땀이 비처럼 흘렀다. 올려 안은 상태가 지속되면 가벼운 아이도 젖은 솜뭉치가 된다. 등에 매달린 배낭도 만만찮은 무게였지만 균형 맞추는 데 도움이 됐다. 아이 엉덩이를 받친 두 손의 깍지가 풀릴 때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숨 돌릴 틈도 없이 집으로 가는 버스가 우리 앞에 섰다.

승객은 적었지만 빈 좌석은 없었다. 감사하게도 이런 경우 양보를 받아 왔다. 그간 자리를 내준 사람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여사님이었다. 내게서 오래전의 자신과 당신 딸을 봤으리라. 그날은 아이를 안은 엄마가 그려진 좌석에는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고, 다른 승객들은 졸거나 핸드폰 또는 창밖에 눈을 둔 모습이었다. 나는 오른손으로는 내리는 문 왼쪽 옆 기둥을 잡고, 왼손으로는 소림 엉덩이를 받쳐 안고서 ‘도움은 필요치 않아. 이 정도는 거뜬하다고!’ 기운을 내뿜었다.

두 정거장이나 지났을까. 팔에 힘이 풀렸다. 등이 휘면서 배가 앞으로 내밀어졌다. “소림아 잠깐 내려서 엄마랑 손잡고 있자, 응?” 눈을 비비며 아이가 끄덕였다. 버스 바닥에 두 다리를 단단히 붙였다. 비틀거리는 아이와 내 몸의 중심 잡기에 전념했다. 버스가 수색역에 섰다. 문이 열리자 퇴근 인파가 좀비에게 쫓겨오기라도 한 듯 앞다퉈 올라탔다. ‘부산행’ 버스 버전 같았다. 나는 아래 세상에서 졸고 있는 소림이부터 재빨리 안아 올렸다.

왼쪽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등에서, 관자놀이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자존심 따위 버린 지 오래다. ‘아이만 앉게 해주신다면 더 착하게 살겠습니다!’ 눈빛으로 간청했다. 그러나 피로 사회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우리는 투명 인간이었다. 과거의 나도 때로 자는 척을 했다. 일곱 정거장은 더 가야 하는데. 엄마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잠들어 축 늘어진 소림은 이제 쌀 한 가마니다. 아이는 내 어깨에 침을, 내 몸은 젖산과 진땀을 분비했다. 젖산 분비가 최고조에 다다르면서 오른손이 기둥을 놓쳤다. 허둥지둥 머리 위 손잡이를 잡는데 왼팔이 말한다. “나는 틀렸네. 먼저들 가시게나 허허” 왼팔이 아이를 떨구기 직전이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오빠랑 불꽃 튀는 닭다리 쟁탈전을 벌였던 날처럼 전광석화와 같이 두 손을 맞바꿨다. 하지만 오른팔도 결국 내 몸뚱이였다. 오른팔이 왼팔에 힘을 성실히도 보태 왔는지 소림을 안자마자 부들부들 떨렸다. 내 마음도 부르르 떨리던 그 순간, 나는 아이언맨으로 변신했다. 얼굴의 철판화!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나는 내 앞에 앉은 젊은이를 시작으로 모든 앉아 있는 이에게 레이저를 쏴댔다. 나와 눈이 마주친 몇은 눈동자만 옆으로 옮기는 고난도 기술을 발휘했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 집 앞에서 풀려버리는 괄약근처럼 스르르 팔이 풀려 아이를 고쳐 안았다. 동시에 ‘설상가상’ 예시로 적합한 장면이 연출됐다. 크로스백에 들어 있던 중학생 때부터의 내 필수품, 앞머리 전용 꼬리빗이 튕겨 오르더니 슬로우모션으로 피융피융 날아가는 것이었다(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버스가 정차하는 동안 그걸 줍겠다고 무릎을 굽혀 팔을 뻗는데 (어찌하여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도 않는지) 버스가 출발했고 나는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아이도 같이. 내 앞 젊은이가 눈이 동그래져선 반쯤 일어나면서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나는 썩은 미소를 착즙하고 말했다. “이번에 내려요.”

부웅, 뒤도 안 보고 떠나는 애인처럼 버스가 내뺐다. 세상은 한없이 차갑기도 한 것이다. 아직은 세상에 무지해 새근새근 잘도 자는 소림의 볼에 코를 댔다. 여전히 아기 냄새가 난다. 그래, 네가 안락하면 된 거지. 그리고, 더는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된다!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아이를 안고 가는데 걸을 때마다 오른쪽 무릎이 굽혔다. 손잡이가 그리워질 줄이야.

몇 년 전, 동네 정형외과 의사가 한눈에도 3일은 안 감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길 이 정도로 통증을 느낀다면 가망 없으니 물리치료라도 열심히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의 길게 자란 때 낀 손톱을 응시했다. “오늘은 급한 일이 있습니다!” 나는 서둘러 안녕을 고했다. 정형외과 마지막 방문이었다.

달 뜨고 별 뜨고 영롱한 밤이다. 그래서 나는 서럽다. 자리를 양보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매일같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 이 고단함 때문에. 전우에게 “오늘은 동지가 데리고 나가시오”라든가 “종일 아기를 봐서 피로하니 잠시 저녁 산책이나 다녀오겠소” 할 수 있는 사람이, 인정하기 싫지만, 사무치게 부럽다!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사님.”

“홀로 아이 키우기가 참, 그것만으로도 외로운데 그날은 더했겠어요.”

“그 시간에 버스에 올라탄 제 생각이 짧았던 게죠. 그 후 몇 가지 목적을 갖고 야금야금, 하지만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요. 그중 택시비 명목도 있답니다.”

“마땅한 쓰임새입니다.”

그때 기사님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벌써 세 번째다. 그는 “아이고” 한숨인 듯 내뱉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액정에 댄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그가 명랑하게 외쳤다.

“저예요!”

(하편으로 계속)

소림이의 유아기 내내 우리는 나가 놀았다. 어스름이 다가와 “너희들 이제 집에 가야지” 할 때까지.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소림이의 유아기 내내 우리는 나가 놀았다. 어스름이 다가와 “너희들 이제 집에 가야지” 할 때까지.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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