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셔츠는 내가 다림질을 해 줘요.”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의 말에 내 아버지가 생각났다. 60대 중반의 남성인 그분은 주말이면 직장에 다니는 30대 아들의 셔츠를 다려준단다. 우리 아빠도 남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자 아들의 셔츠를 다려주셨다.

​거실 바닥에 아주 오래된 진초록색의 거친 군용담요를 펼치고 물뿌리개를 준비한 후 깨끗하게 빨아진 셔츠를 챙긴다. 담요 위에 셔츠를 놓고 깃 부분에 칙칙 물을 뿌린다. 뜨겁게 달궈진 다리미로 힘껏 눌러준다. 후줄근하던 셔츠 깃이 빳빳해지면서 모양이 살아난다. 다리미가 셔츠의 팔을 지나가면 팔이 반듯해지고 앞섶을 지나가면 주름이 사라진다. 아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아들의 셔츠를 한 벌 한 벌 천천히 다리곤 했다.

"어이, 도대체 밤에 출입문은 왜 잠그는 거야?“

야간근무를 하던 며칠 전이었다. 잠긴 출입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턱을 쳐들어 병동 출입문을 가리킨다.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 않고 문을 열어드렸다. 볼일을 보고 들어와서도 할아버지는 몇 마디 더 화를 쏟아내고 병실로 간다.

아빠는 식구들에게 큰 목소리로 화를 내는 일이 자주 있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엄마나 자식들에게 괜히 언성을 높이곤 했다. 어린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싫어서 살금살금 방구석에 숨어있었다. 화낼 일이 아닌데 미간에 잔뜩 인상을 쓴 채 내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70대 중반의 노인에게서 내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걸 그냥 주면 애가 어떻게 먹니?“

아빠는 겨우 젖니가 두 개 돋은 어린 손주의 손에 들린 사과 조각을 보자 애 엄마인 내게 한마디 하신다. 이미 씻어놓은 사과 한 알을 꺼내 다시 뽀독뽀독 소리가 나게 씻으신다. 사과를 반으로 뚝 자르신다. 숟가락으로 씨를 파내신다. 보행기를 타고 있는 손주 앞에 쪼그리고 앉으신다. 숟가락으로 사각사각 사과를 긁어내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신다.

이제 8월 중순인데 동네 과일가게에 벌써 사과가 나와 있다. 연두색의 아오리 품종이다. 20여 년 전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숟가락으로 살을 긁어 먹였던 그것이다. 새콤한 과육을 맛있게 받아먹는 아이를 마주 보며 같이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이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 사과 위에 겹친다.

”이놈의 다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아빠는 40대에 허리를 심하게 다치신 적이 있다. 수술하고 오래 병원에 입원해 계셨지만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연세가 드시면서 수술했던 허리뼈 사이가 좁아지고 찌릿찌릿한 통증이 다리로 연결된 신경까지 괴롭혔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잠을 편히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나도 40대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다. 가끔 몸이 안 좋거나 자세가 나쁘면 허리가 아프다. 심할 때면 다리까지 찌릿하다. 연달아 사흘 동안 밤 근무를 하고 나니 몸이 힘들었나 보다. 새벽에 다리로 뻗치는 통증으로 잠이 깼다. 잠이 덜 깬 채 종아리를 주무르며 앉았다가 아파서 끙끙거리시던 내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아빠를 만난다. 아들의 셔츠를 다려준다는 지인의 말에서, 다짜고짜 버럭 화부터 내는 노인 환자의 성난 얼굴에서, 과일가게에 놓인 푸른 사과에서, 나를 괴롭히는 다리 통증에서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나이가 들면서 아빠를 닮아 커다랗고 또렷하던 쌍꺼풀은 사라지고 자꾸 눈이 처진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피부에 자잘한 점이 많아진다. 아빠처럼 유난히 옆머리에 흰머리가 많이 자란다.

며칠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바라본 거울 속에 내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거울 속 얼굴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아빠, 언제 왔어?”

동네 과일가게에서 아오리 사과를 보면 20여 년 전 아빠가 생각난다. 손주에게 숟가락으로 살을 긁어 먹이며 함께 입술을 오물오물 하던 내 아빠.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아빠.
동네 과일가게에서 아오리 사과를 보면 20여 년 전 아빠가 생각난다. 손주에게 숟가락으로 살을 긁어 먹이며 함께 입술을 오물오물 하던 내 아빠.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아빠.

(최희정은) 젊어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다 육아를 핑계로 그만두고 이십여 년을 딸과 아들을 키웠다. 오십이 코앞인 어느 날 ‘불현듯’ 내 이름으로 다시 살고 싶어 재취업을 했다. 지금은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곳저곳에 글을 쓴다. 돌봄과 글쓰기, 둘 다 마음으로 깊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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