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이 방학했다면서, 안 와?” 엄마의 전화를 받고 횡성행 기차를 탔다. 전원 속 외할머니의 이층집을 좋아하는 소림이 도착하자마자 집 안 곳곳을 탐험한다. 강원도의 여름은 맹렬했다. 냉커피를 타려고(냉커피라는 말을 쓰면 옛날 사람이라지만 나는 꿋꿋하다) 얼음을 꺼내는데 냉동실 선반에서 툭, 뭐가 떨어진다. 엄마의 도토리, 아맛나. 아맛나는 아이스크림이다. 나는 일 년에 한두 차례 좋아하지도 않는 아맛나를 사 먹는다.

나를 낳고 다음 날,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는 왜 이리 늦는 거야?’ 그 길로 아기엄마 명옥은 신생아를 품에 안고 홍제동의 한 산부인과를 나섰다. 구멍가게에서 산 아맛나를 할짝거리면서 명옥씨가 시장 입구로 사라진다. 7월이었고, 명옥의 스물세 번째 여름이었다.

병원 건너 시장에서 백반집을 꾸려갔던 할머니는 “엄마, 나 왔어!” 위풍당당 식당으로 들어오는 딸내미를 본 순간 미역이 넘실대는 들통에 국자를 빠뜨렸다. 그날 명옥은 고열로 죽을 뻔했단다. 어떻게 산모가 나가는 것도 모르냐며, 이 고열을 어쩔 거냐 내 아내를 당장 살려내라, 울아빠가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단다. 살아있는 산모를 살려내라니, 의사는 앞뒤로 흔들리는 자기 머리 박자에 맞춰 눈만 끔벅였다.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는 좋다. 엄마를 사랑해서 아빠가 올챙이였던 나를 출동시켰단 증거니까. 초긍정의 사내가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는 데 필요한 건 사랑의 힘뿐이다.

명옥은 강경의 날다람쥐였다. 여느 날처럼 명옥이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어다니고 있던 그때 그 여고생의 집에 새로운 하숙생이 도착했다. 서울에서 왔다고? 지붕에 앉아 도토리 대신 아맛나를 깨물며 서울 남자를 구경하던 명옥은 얼마 안 가 그와 강가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석양에 물든 척 얼굴이 주홍주홍한 연인이 아맛나를 나눠 먹는다.

나누는 것이 아맛나만은 아니게 되면서 연인은 악동 기질을 기어코 발휘했다. 서울 남자가 명옥의 학부모인 척 학교에 전화를 걸어 수업 중인 명옥을 불러낸 것이다. 깔깔대는 연인을 태우고 강둑을 질주하던 자전거는 문득 날고 싶어졌다. 최고 속도에 도달해 막 이륙하려던 찰나, 이크, 자전거 앞바퀴가 돌부리에 걸렸지 뭔가. 데굴데굴 강가로 굴러가는 연인에게 그 자신들의 웃음소리가 보호막을 쳤다. 괘씸죄까지도 아맛나 속 팥고물처럼 ‘달게’ 받다니, 절레절레, 들을 때마다 고개를 저으면서도 나는 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가끔 조른다. 이모들도, 삼촌도 모두가 아는 이야기.

서울 남자는 서울 남자여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명옥은 남자가 뒤돌자마자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두 다리를 쭉 폈고, 앙앙 울었다. 무용부였던 명옥은 다리를 180도까지 펼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쩐지 동정보단 박수를 받을 풍경, 그리하여 명옥은 딱 절반인 90도로 각 맞춰 울었다. 치밀한 명옥씨, 하지만 겁이 없진 않았던 명옥씨. 다행히 서울에도 아맛나는 있었다.

명옥의 남편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고 아침 일찍 나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들어오거나 안 들어왔다. 어느 아침엔가는 아기였던 내 오빠를 안고 젖병을 물리던 스무 살 명옥이 출근하는 남편 등에 젖병을 집어 던졌다. 그러고선 주저앉아 이제는 180도로 펼쳐지지 않는 다리를 되는대로 뻗고선 엄마아 엄마아 응앙응앙 울었다. 아기만은 꼭 안은 채였다. 아기가 따라 울자 젖병도 하얗게 울었다.

50원을 쥐고 내가 쭈쭈바를 혼자 사러 갈 수 있게 되자 엄마는 반색했다. 돌아오는 내 손엔 쭈쭈바와 아맛나가 함께 들려 있었다. 엄마는 아맛나를 사각사각 베어 먹으면서 내게 당신 무릎을 베고 누우라 했다. 원숭이 엄마처럼 엄마가 내 머리를 고른다. 엄마의 팔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엄마 냄새가 났다(나는 그 냄새를 지금도 기억하는데, 동네를 걷다가 한 집에서 김치찌개 끓이는 냄새가 풍겨올 때면 엄마 냄새도 찌개 바람을 타고 내 콧속으로 들어온다).

엄마 손톱에 톡톡 죽어 나간 ‘이’들이 신문지에 인쇄된 글자 사이사이 쉼표와 마침표가 되었다. 누운 채로 나는 코로는 엄마 냄새를 킁킁대고 입으로는 쭈쭈바를 쭉쭉 빨며 생각했다. ‘외할머니 젖을 먹고 자란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란 내가 이젠 엄마 젖 대신 쭈쭈바를 먹고 있네. 나도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될까?’

하지만 나는 내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못했다. 진통하면서는 의사를 붙들고 당장 나의 배를 열어 아기를 꺼내달라고 눈물로 사정했다. 출산에도 모유 수유에도 의지가 필요했다. 살고 싶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사위의 외도를 몰랐던 명옥은 동동대며 사위 먹일 빵만 사다 날랐다. 명옥은 어째서 딸의 뜬 두 눈이 아무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의아했지만, 산후 우울감이려니 했다. 묵언 수행에 괴로워하다가 나는 마취가 풀리는 때를 기회 삼아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새벽마다 조리원은 팔팔 끓는 미역국 냄새에 잠식당했고, 나는 웩웩대면서 엄마 엄마 하고 송아지처럼 울었다. 그 옛날 명옥씨처럼 두 다리를 뻗지는 못하고 동그마니 몸을 말아 울었다. 아맛나가 먹고 싶었다. 미역국을 좋아하고 아맛나는 먹지 않던 나였다.

밭에 갔던 엄마가 ‘미인 풋고추’를 한 소쿠리 따 왔다. 찜통에서 옥수수를 꺼내면서 엄마가 선풍기 앞에 누워 핸드폰 게임 삼매경에 빠진 손녀에게 물었다.

“소림아, 할머니가 키운 고추 먹어 볼래? 한 개도 안 매워. 아삭아삭 달고 맛있어.”

“아하하. 고, 고추요? 할머니, 저는 옥수수를 먹을게요.”

풋! 휘어진 고추 같은 입을 하고 내가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의 대화가 낮잠을 불러온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엄마랑 소림이랑 같이 있으니 두려울 게 없구나’ 엄마도 나도, 더는 자신이 낳은 자식의 아비와 살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생애 최고의 평온한 여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 여자여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떠나는 기차에 대고 엄마가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기차 안에서 나도 손을 흔들었다. 어째 엄마의 움직임이 어색하다. 이런, 명옥씨의 눈동자가 길을 잃었다. 엄마 여기야 여기, 나는 들리지도 않을 말을 차창 밖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가 나를 보지도 못했는데 정확해서 매정한 KTX는 곧 횡성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게 뭐라고, 내 가슴이 뭉근해졌다. 눈물이 다 찔끔 나왔다. 이 기차가 속력을 끝도 없이 내다가 한순간 공중으로 날아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전석에 앉아 시동 걸고 있을 엄마에게 돌아가 손 흔드는 나를 보여야 하는데.

기차는 빠르고 창밖 하늘은 느렸다. 아무리 달려도 보고 있는 하늘만은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본 하늘 중 엄마가 보지 않은 하늘은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엄마의 하늘을 나는 모른다. 내가 못 본 그 하늘 아래에서 엄마는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상상했을까?

그 순간, 움직이는 차창 캔버스에 파란 지붕의 집이 그려졌다. 지붕 위에 여고생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왔다. 그러자 혁명가가 되리라 결심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선 그 학생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깃발을 나부끼듯 힘차게. 천천히 손을 들어 보이면서 나는 생각했다. 집 앞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아맛나를 사야겠다고.

나에게 강원도 횡성은 지구라는 우주 속 행성이다. 나의 엄마가 사는, 엄마 행성. 열차 안에서 찍은 횡성 풍경.
나에게 강원도 횡성은 지구라는 우주 속 행성이다. 나의 엄마가 사는, 엄마 행성. 열차 안에서 찍은 횡성 풍경.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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