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떻게 개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아들은 빨래를 개고 있었다.

“갤 때마다 어려워.”

찌개에 넣을 애호박을 썰던 나는 아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들의 손에는 내 브래지어가 들려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도 잘 몰라. 너 편한 대로 해.”

그렇게 대답해놓고 아들이 하는 양을 지켜본다. 솔직히 40여 년을 저것을 몸에 붙이고 살았던 나도 어찌 개야 할지 잘 모른다.

“여름에 저걸 하면 엄청 덥거든.”

​찜통 날씨에도 찌개를 끓인답시고 불 앞에 서 있던 내가 말했다.

“응. 그럴 것 같아.”

아들은 내 말에 긍정한다.

“요즘은 출근할 때 외에는 잘 안 입어. 브래지어가 여성이 꼭 입어야 할 속옷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입건 안 입건 그건 엄마 마음이지.”

20대 초반인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반응이다.

“요즘은 안 하고 다니는 여자들도 꽤 있던데, 아들 보기에는 부담스럽지 않니?”

부담까진 아니어도 익숙하지는 않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브라자’라는 걸 착용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여성이 10대 초반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당연히 착용해야 하는 속옷이었다. 엄마나 언니가 준비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엄마도 입고 큰언니도, 작은 언니도 입고 있으니 팬티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 그렇게 살아왔다. 집 밖을 나설 때는 꼭 했다. 타인의 시선이 쏠리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몸의 답답함을 참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브래지어를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여성이 젖꼭지가 표시나는 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꼭 갖추어야 할 속옷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세대별로 생각의 차이는 있다. 젊은 이삼십 대 여성들은 필수적인 속옷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중년 이후의 여성은 당연히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와 같이 일하는 여성은 60대인데 어느 날 내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외출할 때도 있다고 말하자 깜짝 놀라며 ‘비밀’로 해주겠다고 농담을 했다. 나는 그게 비밀이 되어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속옷을 챙겨 입지 않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서 굳이 내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분도 집에 들어가면 바로 벗어버린다고 한다. 집에서까지 그 답답한 것을 하고 있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이 브래지어를 입는 것은 관습에 의해 시작해서 습관적으로 할 뿐이지, 본인이 입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요즘 브래지어 안 하니까 덥지 않아 정말 좋더라”는 내 말에 친구가 “처지지 않아?”라고 되물었다. 나는 “중력의 방향으로 처지는 건 당연하지”라고 대꾸했다. “난 많이 커서 안 하면 힘들어. 하는 게 편해. 그런 거 모르지?” 친구가 낄낄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래, 하고 싶은 사람, 해야 하는 사람만 하면 되는 거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땡볕이 내리쬐던 며칠 전, 친구와 나는 이런 대화를 하며 폭소했다.

올해는 배꼽이나 밑가슴이 드러나는 ‘언더붑’(underboob)인가 하는 짧은 웃옷이 젊은 세대에 유행이다. 그런 옷을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옷이 낯설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싫지는 않다. 그들에게는 옷이 길든 짧든 그저 선택이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여성에게 보내는 이상한 눈총과 불편한 시선이 없다면 여성들이 느끼는 선택적 부담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저 관습과 규범의 눈으로 타인의 선택을 판단하는 세상은 고리타분하다.

눈 코 입 턱을 덧붙이거나 깎아내는 것조차 자유인 세상이다. 그러니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는 ‘옷’으로 생각하거나 말거나도 개인의 자유다. 타인을 신경 쓰면서 가리기보다는 입거나 벗는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나이 든 여성이 많아지면 좋겠다.

브래지어를 입건 벗건 그건 전적으로 여성인 우리들의 일이니까. 이런 언니들의 모습은 어린 자매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니까.

미국의 세계적 탑모델 켄달 제너는 브래지어 해방의 열렬한 지지자다. 2015년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습. (인스타그램)
미국의 세계적 탑모델 켄달 제너는 브래지어 해방의 열렬한 지지자다. 2015년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습. (인스타그램)

(최희정은) 젊어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다 육아를 핑계로 그만두고 이십여 년을 딸과 아들을 키웠다. 오십이 코앞인 어느 날 ‘불현듯’ 내 이름으로 다시 살고 싶어 재취업을 했다. 지금은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곳저곳에 글을 쓴다. 돌봄과 글쓰기, 둘 다 마음으로 깊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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