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무릎을 높이 들고 뛰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규칙을 엄수하는 관리의 얼굴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p.10)

읽고 또 읽는 이 단편을 읽는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영락없는 노인이 된 아버지.

상상 속 내 아버지는 언제나 인쇄기를 돌리고 있다. 30년 넘게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인쇄기를 돌린 적 없는 아버지이나 나는 인쇄기 돌리는 아버지를 소환한다. 그 장면은 마음을 수평으로 맞추고, 고요해진 나는 한 마리 해파리가 되어 깊은 바다를 유영한다.

아버지에게 딴 부인과 아들이 있음을 몰랐던 13년간 나는 늦게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공평의 미덕을 실천하시어 한 주간 세 번은 우리 집으로, 네 번은 그 집으로 그 다음주는 횟수를 바꿔 번갈아 귀가했다. 아버지는 그러함에도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그 사실이 가끔 나를 무너뜨린다. 애증이란 그런 것이다. 무너뜨렸다 세웠다 반복하는 것.

떠오르는 아버지가 또 있다. 정확히는 낚시하는 아빠의 등이다.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구나라고 처음으로 감지한 기억은 여섯 살의 어느 새벽이다. 낚시 가방 꾸리는 소리에 깬 내가 아빠를 쫓아갈 거라며 앙앙 울어댔다. 과연 ‘아빠 바라기’다. 다정하고 웃겨주고 잘 웃어주고. 그 웃음소리란 또 어찌나 호탕한지. 단번에 공기를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아빠가 좋아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실상은 입만 쑥 내밀고 손 흔들어주는 ‘착한 아이’였지만, 유독 그날만 진정 홀로 가겠다면 나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며 서럽게 운 것이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고 허허 웃더니 엄마보고 옷을 입히라 했다. 아빠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얀 맵시나를 타고 둘만의 낚시터 데이트를 떠났다. 차창을 통과한 여명으로 고양이 세수를 하면서.

낚시터에서의 일은 하나만 떠오른다. 나들이만 가면 신호가 왔던 나였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 똥” 아닌, “아빠, 똥” 을 외쳤다. 그날이라고 뭐 달랐겠나. 하고 많은 순간 중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아빠가 엄마에게 혼나서다. 귀가한 나를 씻기다 말고 엄마가 소리쳤다.

“애 엉덩이가 이게 뭐야. 연탄에 앉혔어? 왜 씻겨지지도 않아?”

“아이고, 세상에 그렇게 시커매졌어? 휴지가 없어서 신문지로 닦아줬걸랑. 이것도 다 추억이지 추억, 허허허.”

낚시터에서의 기억이라고는 “아빠, 똥”밖에 없는 내가 낚시하는 아빠의 등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는지, 그것에 관해 말해야 한다.

한번은 엄마의 책상 서랍에서 사진관 봉투에 든 대여섯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의뭉스러웠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낚시하는 누군가를 찍은 그 사진들은 초점이 맞지 않았다. 피사체‘들’이 꿈속 인물처럼 흐릿했다.

“엄마, 이 사진들 뭐야?”

“세상에 이게 아직도 있었네. 어디서 찾았냐? 요오기 K인쇄소 잠바 입고 앉아 있는 등짝이 느이 아빠, 고 옆 간이의자에 앉은 빨간 옷이 타자 치는 미스김. 미행하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다. 엄마 대단하지 않냐?”

초점이 나가 어디에도 쓸 수 없었을 증거물 ‘1, 2, 3’은 엄마 탐정의 미행 기록이었다. 나야 뭐 배꼽 잡고 데굴데굴 구를 수밖에. 먼 과거는 때로 장르 전환된다. 스릴러에서 코미디로.

‘달려라 아비’의 주인공은 어떤 연유로 분홍색 야광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아버지를 상상하게 된 걸까? 세상 느렸던 아버지가 그 누구를 위해 뛰어본 적 없던 아버지가, 구애하던 처녀랑 자고 싶어서 달렸다는 일화를 어머니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 처녀는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나를 낳았을 때도 뛰어오지 않은 사람이었다. (...) 그런 아버지가 단 한 번 세상에, 온 힘을 다해 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 어머니는 ‘평생 이 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단 지금 당장 피임약을 사 와야만 한 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고. 아버지가 뛴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p.12-13)

소설 속 아비는 아기가 태어나자 도망갔다. 주인공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기와 엄마를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를 분홍색 야광 반바지를 입고선 끝도 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상상해주었다. 어머니와 사랑을 나누려고 약국으로 뛰어가는 아버지를. 마지막에 주인공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십수 년을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눈이 부셨을 아버지를 염려한다. 어느 밤 딸은 아버지의 얼굴에 선글라스를 씌운다.

“아버지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치 입맞춤을 기다리는 소년 같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커다란 두 손이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운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젠 아마 더 잘 뛰실 수 있을 것이다.” (p.29)

상상 속 내 아버지도 쉬지 않고 인쇄기 돌리고 종이를 추리느라 어깨 통증에 시달릴 것이다. 아버지 어깨에 파스를 붙여드려야겠다. 좋아하는 꿀물도 타 드려야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고 평생을, 그러니까 돈을 찍어냈던 나의 아빠, 아버지.

그리고 또 한 분의 아빠. 낚시터에서 K인쇄소 잠바를 입고 있는 그에게도 가봐야 한다. 찌랑 눈싸움 중인 아빠에게 다가가 톡톡 등을 두드렸다. 나를 보고 해사하게 웃는 아빠가 ‘혼자서 딸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냐. 내 딸은 너인데.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통화할 때마다 하는 이 말을 건네며 내 등을 쓸어주었다.

“아빠, 뭐 좀 잡으셨어요?”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가슴을 쫙 폈다. 특유의 젠체하기다.

“아이스박스 열어봐라. 향어 메기 붕어 모조리 다 있다. 향어회가 얼마나 맛있나 너도 알지? 저번에 아빠가 떠 줬잖니. 오늘은 이만 집으로! 민물고기 파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중에도 미스김이 신경 쓰여 옆에 놓인 간이의자로 고개를 돌렸다. 미스김은 사라지고 없었다. 又자 모양의 그 의자에는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머리띠를 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 뭉친 떡밥을 바늘에 끼겠다고 낑낑거리는 여섯 살의 내가.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달려라 아비’. 표제작은 만삭의 어머니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해 떠올리는 상상이다. 2005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달려라 아비’. 표제작은 만삭의 어머니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해 떠올리는 상상이다. 2005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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