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여름. 나의 사계절은 겨울, 겨울, 겨울, 겨울이었기에 우리 모녀는 북풍을 타고 Y동으로 이사 왔다. 영화 ‘초콜릿’에서 북풍이 불던 날, 빨간 망토를 두른 비안느 모녀가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로 온 것처럼. 차이라면 비안느는 딸의 손을 잡고, 나는 소림을 아기띠로 업고 왔다는 정도랄까?(미모의 차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비안느 역을 맡은 배우가 줄리엣 비노쉬였으니)

전 동네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지만 다니는 길로만 다녔던 내게 Y동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퀴선생들로 인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사 온 나는 여전히 얼빠진 상태였다(전 기고 ‘독립의 서막’ 참조).

당시의 내 특징을 적어보자면.

뱀파이어 바이오리듬: 낮 동안 세상사 동태눈깔로 스캔, 해가 져야 머리와 동공이 맑아졌음.

거울과 내외하기: 거울 속 좀비를 향해 오대수 대사를 외친 적이 한두 번 아님. “누구냐, 넌?”

비싼 화장품 안 쓰고도 안티링클: 매사 무표정으로 일관.

앙드레김 코스프레: 옷 따위 신경 안 쓰고 단벌로 돌아다님.

무호흡증: 정신을 차려보면 숨을 안 쉬고 있었음.

쓰다 보니 눈물이 솟구친다(약 27개 더 남았으나 오열 방지 차원으로 그만 나열하겠다). 출산 한 달 전부터 흡사 무생물이었던 나는 일 년 넘게 감흥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도 찬란한 호모사피엔스! 시궁창에 빠져도 도랑 바닥을 훑어 사금파리라도 찾아 기뻐하는 종이 인간 아니겠는가.

나의 사금파리는 ‘카페라떼’였다. 지금은 아메리카노 파인 나는 본디 라떼 파였다(아메리카노를 돈 내고 마시기 아깝다는 이상하고 촌스러운 심리가 내게 있었다).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섞인 맛과 향은 눈보라 치는 겨울날 벽난로 앞에 앉아 불멍 때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세상에서 나만 무생물’에서 벗어나려면 라떼가 맛있는 카페를 뚫어야 한다!

“첫 만남요? 잊을 수 없죠. 해 질 무렵 주황색 아기띠를 멘 소영 씨가 문 열고 들어오던 모습을요. 아기띠를 이렇게 앞으로 해서는 소림을 안고 있었잖아요? 소림이가 세상 풍경을 볼 수 있게요. 모녀의 눈이 동시에 나를 향했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은 ‘엄마도 아기도 표정이 없네’였어요. 로봇처럼 메뉴를 훑던 소영 씨가 단조로운 톤으로 첫 주문을 했답니다. “따뜻한 라떼 주세요. 우유를 적게 넣어서 진하게요.” 귀여웠지, 뭐. 호호호.”

청포도에이드처럼 청량하게 웃는 이 인터뷰이는 내가 찾아낸 카페 ‘커피 Mill’의 황은미 사장님이다. 행복한 연인이 “나 처음 봤을 때 어땠어?” 하는 것처럼 사장님과 나도 그러했다.

집에서 1분 거리의 커피밀로 매일같이 가 소림을 업거나 안고 라떼를 마셨다. 사람이 그리울수록 사람을 멀리했던 내게 나를 아는 이 없는 세 평 남짓의 프로방스풍 카페는 집보다 아늑했다. 커피밀의 전면 창으로 보이는 커다란 느티나무는 또 어찌나 다정하게 듬직하던지. 달려 나가 나무에 안기고 싶은 충동이 가끔 일었다.

막내 이모뻘인 사장님과 나는 책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빠르게 친해졌다. 하루는 사장님이 동네에 연고자가 없는 나를 걱정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자기한테 전화하라고, 아니 그럴 것 없이 무작정 커피밀로 달려오라고 신신당부했다. 하하, 나는 웃었다.

시간이 저절로 흘러 일상의 재미를 하나, 둘 회복할 즈음, 저녁 설거지 중인 내 뒤로 쿵 소리가 났다. 식탁에 올라가 장난치던 소림이 떨어지면서 모서리에 입을 부딪친 것이다. 피로 범벅된 입으로 소림이 악을 쓰며 울었다. 겉으로는 냉정을 유지했지만 내 심장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소림을 안고 커피밀로 달려갔다. 사장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줄줄 났다. “소림이가...식탁에서 떨어져서 피가..피가...그래서...” 꺽꺽대느라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장님이 낚아채듯 선반에 놓인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우리를 태운 모닝이 병원을 향해 달렸다. 차창 밖 우주엔 주인 없는 카페만이 별처럼 반짝였다.

금세 지혈된 소림의 입술은 조금 부풀었고, 나의 심장은 다음날에도 빠르게 뛰었다. 이혼 후 모종의 죄책감에 시달려온 나는 ‘엄마 자격’ 운운하며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동태눈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따뜻한 라떼를 만들어왔다. 나의 눈을 보며 가만가만 미소 짓던 그녀가 내 두 손을 잡았다.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소영 씨 잘못이 아니에요. 모두 다요.”

그때였다. 팅, 마음속 빗장이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윌 헌팅(맷 데이먼)은 MIT의 청소부다. 전 세계에서 몇 명 풀지 못한, MIT 수학과 학생들도 포기한 문제를 풀어낼 정도로 그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다. 그러나 윌은 여러 번 파양되고 양아버지에게 학대당했던 트라우마로 인해 재능을 발휘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그녀도 밀어낸다. 누군가를 믿는 것이 그에게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에게 상처받을까 두려워 더 깊어지기 전에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윌.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버림받고 학대당했다고 여겨온 윌은 정신과 의사 숀(로빈 윌리엄스)에게 공감과 이해를 받으면서 변화한다.

숀이 윌의 눈을 보고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잘못한 것이 없어.” “알아요.” 윌은 머쓱하다. 온화하지만 단호하게 숀이 다시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알아요. 안다고요.” 윌의 눈동자가 점점 흔들린다. “아니, 넌 몰라. 윌...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말만을 거듭하는 숀을 밀치고 화내고 씩씩대던 윌은 마침내 숀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엉엉 목 놓아 운다.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 “네 잘못이 아니야.” 상처와 대면하고 자신과 화해한 윌의 앞날은 점차 좋아질 것이다.

커피밀 자리에 샐러드 가게가 들어섰다. 손녀 육아를 위해 사장님이 카페를 접었던 2년 전 여름날, 나는 실연당한 사람처럼 울었다. 한 사람이면 된다. 나를 믿고 지지하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으면 넘어지고 굴러도 일어설 수 있다. 그때의 ‘한 사람’, 나의 친애하는 이웃 황은미 사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던 그 밤이 떠오른다.

“소영씨, 집이에요? 소림이랑 나와요, 차 타고 서오릉 한 바퀴 돌게. 드라이브 좋아하잖아요. 거기 장작구이 통닭이 아주 맛있어요. 한 마리 사줄게!”

영화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네 잘못이 아니야"
영화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네 잘못이 아니야"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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