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마지막 포옹은 열한 살 겨울 셋째 이모네서였다. 이모는 몇 해 부산에 살았다. 어느 날 엄마는 시내 나가는 모양새로 오빠와 나를 데리고 당신의 여동생에게 갔다. 기차인지 버스인지 무엇을 타고 갔나 기억 속 나는 갑자기 부산에 와 있다. 용두산 공원 탑 앞에서 오빠랑 차렷하고 찍은 사진이 있는 걸로 보아 나름의 관광도 했음이다.

그래도 알 수 있었다, 여행이 목적이 아님을. 부산행 며칠 전, 아버지의 흰색 와이셔츠가 사진 한 장을 떨궜고 다림질을 하다 말고 그것을 주워든 엄마를 나는 힐끔 살폈더랬다. 화장대 중앙에 사진을 전시하고 엄마는 외출했다. 그 속엔 엄마만큼 젊고 엄마보다 못생긴 여자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이모네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엔 쌀 포대 같은 것도 있었다. 이모가 살피고 간 이불에 엄마, 나, 오빠 순서로 누웠다. 이윽고 따닥따닥 소리가 검은 고요를 깨웠다.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왔으나 우리 셋은 이를 부딪치며 달달 떨었다. 냉골이었다. 나는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엄마, 추워”했다. 그때 엄마도 훌쩍훌쩍 소리를 냈는데 우는 것일까 봐 엄마 쪽으로 몸을 돌리진 않았다. 몸을 돌린 건 엄마였다. 엄마는 “춥지” 하면서 나를 꼭 안았다. 엄마가 팔베개해 주고 안아 우리는 손깍지 한 듯 밀착됐다. “이렇게 꼭 껴안았는데도 춥다니!” 나는 깐족댔다.

환상처럼 남은 장면이다.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엄마와 손잡거나 포옹한 적 없다. 엄마가 상처 입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공범이 된 듯했다. 갈수록 엄마가 어려워졌다. 내가 ‘김소영’이거나 ‘김홍소영’이었어야 했다. 아니 성 따위는 상관없다. 아버지의 다정과 유머를 사랑함이 나의 죄목이었다. 다행히 손 못 잡고 안지 못해도 사랑은 할 수 있더라. 나는 어려운 대상에게 잘 빠졌으므로 엄마를 사랑했다. 그게 아니어도 내 엄마 김명옥은 워낙 마성의 여인이다.

마주 오던 행인이 명옥 씨의 어깨를 툭 치고 그냥 갔다? 우리의 명옥 씨는 참고 넘어가지 않는다.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를 받아주고, 개다리춤을 췄다(눈을 의심할 필요 없다. 개다리춤이라고 쓴 게 맞다). 만약 외삼촌이 “누나, 우리 언제 엄마 모시고 새조개 먹으러 가자” 했다면 명옥 씨는 “그러니까 언제 몇 시에?” 그 자리에서 약속을 잡는다. 명옥 씨에게 빈말한 자 두고두고 한 소리 들을지어다. 약속의 날 그들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건 틀림없는 새조개다. 즐거운 명옥 씨는 개다리춤을 추고 개다리춤 신봉자들은 감격의 어깨춤을 춘다.

누구든 명옥 씨의 개다리춤을 목격한 순간 과거의 개다리들은 우주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배삼룡 할아버지가 생전 그녀의 춤을 못 봐 다행이다. 조금은 불행해진 채 생을 마감하셨을지 모르니. 명옥 씨의 개다리춤은 두 다리를 땅에 붙인 채 마름모꼴로 오므렸다 벌렸다만 하는 딱딱한 춤사위가 아니다. 숭구리당당 김정렬 아저씨도 울고 갈 유연성과 엇박자의 미학이 결합한 예술 작품이다. 춤이 곧 음악이기에 애써 노래를 찾아 틀 필요도 없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팔랑팔랑 가볍게 부리는 재간이다.

나와 함께 개그콘서트 방청 갔던 명옥 씨는 녹화 직전 가진 행사에서 “춤 대결을 시작합니다! 상품도 있지롱.” 사회자가 외치자마자 KBS 공개홀 무대로 뛰쳐 올라갔다. 비보이랑 춤 대결을 펼친 명옥 씨. 비보이가 헤드스핀을 하자 엄마는 개다리춤으로 응수했다. 관객들이 언빌리버블을 외치며 흥분했다. 오로지 관객 투표로 1등을 거머쥔 개다리춤 여제는 상품으로 받은 디지털카메라를 100점짜리 시험지처럼 흔들며 내게 달려왔다. 명옥 씨가 살가운 엄마가 아니어도 좋았다. 손을 잡거나 안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우리 남매를 떠나지 않고 개다리춤을 춰 주는데.

여전히 영화 ‘아나키스트’의 결말을 모른다. 학부 3학년 때 수업을 마치고 친구랑 극장에 갔다. 순전히 배우 이범수를 좋아하는 친구 때문이었는데 영화가 시작하면서 자막으로 뜬 ‘각본 박찬욱’에 내 눈도 반짝였다. 결말로 한창 달려갈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전원을 안 껐다니, 당황해 핸드폰을 끈다는 것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소영아”, 아버지였다. 나는 “지금 극장이에요” 소곤댔고 아버지는 “다 보고 세브란스 응급실로 와. 엄마한테 접촉사고가 났어. 큰 사고 아니니까 영화 끝까지 보고 와” 했다.

아버지의 톤이 침착해서 정말 별일 아니구나 싶어 친구를 안심시키고 자리를 지켰다. 1분, 2분... 시간이 흐를수록 보이지만 못 보고 들리지만 못 듣는 지경이 됐다. 아버지의 침착이 석연찮다. 눈앞에는 거사를 앞두고 기념사진 찍는 의열단이 영정사진처럼 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쿵 했던 건 그들의 최후를 예감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극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때부터 지하철에 몸을 실은 동안을 제외하고는 걷지 않았다. 신촌역서 세브란스 응급실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얼마 전에 선물 받은 그림책 ‘모치모치 나무’를 소림과 읽다가 한 장면에서 멈췄다. 울지는 않았는데 소림은 “엄마, 이 장면이 그렇게 슬퍼?”하면서 내 등을 가만가만 토닥였다.

사냥꾼 오두막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다섯 살 마메타는 밤마다 할아버지가 따라가 줘야 오줌을 눌 수 있다. 밖에는 밤만 되면 하늘 가득 풀어 헤친 머리카락을 부스럭대며 “와악!”하고 두 손을 쳐드는 모치모치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는 모치모치 나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마메타를 무릎 사이에 끼고 “좋은 밤이다. 깊은 산속 사슴이랑 곰들이 코 풍선 불며 곯아떨어졌겠지. 자, 쉬-이” 한다. 동짓달 스무날이 왔다. 할아버지가 산신령의 축제인 오늘 축시에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지고 그 광경은 용기 있는 딱 한 아이만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난 도저히 안 되겠네......” 마메타는 생각만으로도 오줌을 쌀 것 같다. 그날 밤, 마메타는 곰이 끙끙대는 소리에 잠이 깬다. 할아버지가 곰처럼 몸을 웅크리고 신음하고 있었다. “마, 마메타. 할아비는 배가 좀 아픈 것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방바닥에 쓰러져 더 심하게 신음할 따름이었다.

내가 멈춘 건 그다음 장에서였다.

“ ‘의사 선생님을 불러야 해!’ 마메타는 강아지처럼 몸을 웅크리고는 앞문을 몸으로 들입다 밀어젖히고 내달렸지. 잠옷 바람에, 맨발로, 오 리나 되는 산기슭 마을까지. 서리가 발을 깨물었어. 발에서 피가 났어. 마메타는 울며울며 달렸지. 아프고 춥고 무서웠어. 하지만, 그렇게 좋은 할아버지가 죽는 게 더 무서워 울며울며 산기슭의 의사 선생님에게로 달렸어.”

- ‘모치모치 나무’ p.21-23

스물두 살의 봄밤, 강아지처럼 몸을 웅크리고 신촌역 개찰구를 밀어젖혀 세브란스 응급실까지 내달리는 내가 보인다. 걸어가면 엄마가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장이 폭발할 직전까지 달려야 신령님이 나를 어여삐 봐주시어 내 엄마를 살려줄 것이었다. 도착하니 아빠가 울고 있었고, 저쪽에선 울면서 달려오는 오빠가 보였다. 오빠도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개찰구로 돌진했을까?

의식 없이 응급실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다 말고 나는 숨만 몰아쉬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코끼리 다리만큼 부은 엄마의 다리가 발길을 붙들었다. 장 파열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엄마는 수술실로 실려 갔다. 몇 시간 전, 연대 앞은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쥐색 소나타2와 파란 트럭이 정면충돌했다.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할 때 마주 달려오던 차는 엄마의 소나타였다. 엄마의 해마에 충돌의 순간은 없다. 거인이 무심히 밟고 간 듯 소나타는 구겨졌고 엄마는 도로에서 발견됐다.

오랜 병원 생활 끝에 명옥 씨는 다시 개다리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후유증으로 장 유착이 일어나 그 뒤로도 입원이 잦았지만 언제나 집으로 돌아왔다.

재혼 전 얼마간 싱글맘이었던 엄마. 그 시기에 나 또한 싱글맘이 되었으니 한때 우리는 싱글맘 동지였다. 명옥 씨는 당신 딸에게 이러쿵저러쿵 훈계하지 않는다.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반달눈을 지으며 개다리춤을 춰 보일 뿐이다. 손을 잡지 않아도 포옹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극진하다. 그나저나 마메타는 불 켜진 모치모치 나무를 봤을까, 못 봤을까?

그림책 ‘모치모치 나무’에서.
그림책 ‘모치모치 나무’에서.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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