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놀러 온 친구의 차를 타고 우리 동네 O마트에 갔다. 우리가 탄 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느리게 회전하며 내려갔다. ‘0’에서 마이너스의 세계로 갈 때마다 이렇게 깊숙이 파 내려간 인간이 신기하고도 으스스하다.

마음먹은 인간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이윽고 펼쳐진 너른 주차 공간을 돌면서 “우리 꼭 소화된 결과물 같지 않냐? 위랑 장이랑 다 통과했어. 크크.” 농담하던 친구가 반응 없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놀라 물었다. “야! 너 왜 울어?”, “지금 알았어. 지하 주차장, 8년 만이야.”

나는 나고 자란 이 동네를 벗어난 적 없다. 당시 아직 학생이었던 P와의 신혼을 나의 본가에서 시작했다. 단독주택의 2층은 우리 부부만의 공간이었지만 나는 때로 갑갑함을 호소했다. 그런 날이면 P는 나를 차에 태우고 밤의 자유로를 달려 풍동의 한 일식집으로 향했다. 스피커에서는 Acoustic Cafe의 ‘Je Te Veux(난 널 원해)’와 ‘Last Carnival’이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두툼한 회를 앞에 둔 나는 “어째서 나에게 온 아기는 하나같이 유산되냐”고 훌쩍였다. P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건강한 아기가 다시 찾아올 거고 안 와도 상관없다면서 회 한 점을 내 입에 쏙 넣어줬다. 다시 자유로를 타고 오면서 우리는 코스처럼 O마트에 들러 잡다한 것을 쇼핑한다. 카트를 끌면서 그 안에 곰돌이 모양 베개나 교체할 때도 안 된 자동차 와이퍼 같은 것을 담아 꽉 채웠다.

우리만의 집이 생기고 건강한 아기도 태어났는데 남편이 없어졌다. P는 차만 갖고 떠났다. 집에만 있으면 현실 인지가 어렵고 멍해져서 나는 되도록 하루에 한 번은 외출했다. 아기를 업고 걸어서 갈 데가 마땅찮아 종종 O마트로 향했다.

개천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소림아, 더러운 물이 반짝이는 윤슬 때문에 예뻐 보여. 저 물은 그럼 예쁜 물일까? 윤슬이라는 단어만은 참 예쁘지?”라며 떠들었다. 아직 주고받지 못할 뿐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는 이것은 분명 대화다. 경청이 대화의 핵심이므로 소림은 초고수였다.

O마트 1층부터 8층까지 빈 장바구니를 들고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소림은 사람 구경하느라 손으로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발로는 팔랑팔랑 날갯짓했다.

소림이가 쇼핑 카트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랑 마주하고 카트를 밀면서 돌아다니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일상을 선물하는 엄마가 된 이 기분은 얼마 못 갔지만. 곧 다른 풍경이 들어왔다. 부모와 아이로 이루어진 카트 가족, 그 조합이 내 옆을 지나가면 불시에 어린 스나이퍼의 비비탄을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가슴이 따끔했다. 소림의 어린이집 친구 가족도 가끔 마주쳤다. 카트가 교차할 때 아이들은 손을 흔든다. 생필품과 쓸모없는 것들이 섞여 산을 이룬 그 가족의 카트가 생경했다.

더는 곰돌이 베개 같은 것을 사지 않는 나의 카트엔 야쿠르트와 치즈만 들어 있었다. 긴축 생활의 필요는 물론이고, 나에게는 많은 양의 물품 구매가 허용되지 않았다. 내가 들 수 있는 만큼을 사 들고 예외 없이 1층 정문으로 나가야 했다. 그가 몰고 사라진 우리의 첫 차 세라토는 양질의 생활과 부합했다. 생수 한 세트도 못 사가다니. 나는 마트 정문으로 나가 그동안 모아온, 내 몸을 뚫지 못한 비비탄들을 한주먹에 쥐고선 아무렇게나 뿌렸다. 모이인 줄 알고 모여든 비둘기들이 나를 흘겨보았다. 뭘 봐, 더는 이런 기분으로 카트를 끌 순 없다고! 행복의 정형을 깨뜨리려면 큰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세웠던 나만의 중심 가치를 반추해야 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카트’의 한 장면이다. 대형마트에서 계산원과 청소원으로 일하는, 정규직 전환을 앞둔 비정규직 ‘여사님’(남자 정규직 직원들이 여사님이라 부르지만 폄하된 ‘아줌마’로 들려 듣기에 불편하다)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해고 통보를 받는다. 반찬값 아닌 생활비를 벌러 나온 여사님들은 일방적이고 부당한 해고 통보에 항의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뿐, 회사 측은 ‘아줌마들’이 지쳐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여사님들이 노조를 결성했다. 충돌이 예고된 지금, 허름한 탈의실에서 핑크빛 단체 티셔츠로 갈아입은 여사님들이 거울 앞에 나란히 섰다. 그 거울엔 ‘단정한 용모, 웃는 얼굴 기본입니다’, ‘두발단정’, ‘명찰’, ‘악세사리’ 스티커가 붙어 있다. 스티커의 내용을 어기면 반성문을 써야 하고 벌점을 받기에 경련이 나도록 미소 지어온 여사님들이다. 그 순간 그들은 거울 속 자신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 이 색깔 참 잘 받죠, 성님?”, “자네는 마 살결이 하얘갖고 훤하다”, “우리 성님은 시집가야 쓰것소” 신이 난 여사님들이다. 이것은 진짜 웃음! 권리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주머니들이 두려움 속에서 꽃피운 미소였다. 나도 그 미소를 지어봤다.

행복은 ‘자발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인생은 투쟁의 연속, 매번 승리하지 못해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가능하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와 둘이 남겨지는 게 무서워서 P를 붙들었다. 붙잡을수록 P의 몸집은 커졌고, 나를 보는 그의 눈이 환멸의 레이저를 쏘아댔다. 그러함에도 남편 바짓자락을 붙들다니, 이 무슨 자신을 하대하는 모양새인가. 각성한 내가 읊었다(전통적으로 영웅은 영웅이 되기 직전 각성을 거친다).

“내 인생의 주도권은 오직 나에게 있도다.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소림과 알콩달콩 살 것이니 그대는 그대의 연인 곁으로 가시오!” 음, 이혼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마자 번개같이 사라진 P로 인해 잠시 동공 지진이 일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아무튼 이 선언이 나에게 준 카타르시스는 대단했다. 우리 모녀는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이 출발한다!

자가용은 없어도 우리에겐 쇼핑 카트가 있다. 이 카트를 모는 운전사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다행히 이 운전사는 책을 즐겨 읽는다. ‘리빙 포인트’는 모 신문에만 있지 않았다. 문학에도 있었다. 후에 2부작 드라마로도 제작된 김영하의 단편 소설 ‘아이를 찾습니다’를 읽은 그 밤,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한 부부가 마트에서 잠깐 한눈판 사이, 카트에 타고 있던 그들의 세 살 난 아들이 카트째 유괴당한다. 11년 후 아들을 되찾으나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무려 엄마가 되어서는 안전불감증을 달고 살다니. 달라져야 했다. 카트에 탄 소림과 한 몸처럼 다니자! 이 포인트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무료한 날 무료입장한 O마트를 구석구석 탐방했다(무료일 리가. 소림이 말을 잘하게 되면서 점차 ‘쓸데없는 물건 탑’과 함께 마트 마일리지를 쌓아갔다). 소림은 열대어 수족관이 있는 5층에서 오래 머물렀다. 아이는 “물고기야, 물고기야” 하면서 눈으로 열대어의 헤엄을 쫓아다녔고 나는 그런 소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둘이 함께여서 행복했다. 나 혼자라면 오지 않았을 물고기 코너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소림이 행복해 보여서 행복했다. 이 행복을 지키려면 카트를 도난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 내 아이가 타고 있으니까.

지금은 카트엔 물건만 담는다. 아홉 살은 카트를 탈 수 없다. 여전히 마트 나들이는 즐겁고,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카트 가족을 봐도 무감하다.

그런 내가 오늘,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흘리다니. 뻔질나게 O마트를 드나들었어도 지하 주차장에 올 일이 없어 유예되어온 결핍이었다. P가 나를 위해 자유로를 달리고, 회를 사주고, 마지막으로 이곳에 들렀던 그 밤들의 공기 같은 것이 오랜만에 감각됐다. 내 옆에 세워진 세라토에서 과거의 우리 부부가 내려서는 팔짱을 끼더니 “카트를 여기서부터 끌고 갈까, 아님 올라가서? 100원은 챙겼지?” 종알대며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0에서 마이너스의 세계로 내려갈 때의 기분 운운은 이 주차장으로 빙빙 돌며 내려올 때 내가 P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자기야. 인간이 이렇게 깊이 파 내려올 수 있다니, 이게 말이 돼?”

P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신기하고도 으스스하지. 그런데 있잖아. 오로지 깊게만 팔 순 없어. 스피노자? 그 사람 말이 맞아. 깊이 파려면 넓게 파야 해.”

나는 P와 카트를 끌었다. 지금은 떠나간 P대신 그와 다니던 마트에서 소림이와 카트를 끈다. 나는 울면서 카트를 끌고 투쟁하는 영화 속 여사님들이 더 이상 아니다. 자가용은 없어도 나와 소림에겐 즐거운 쇼핑 카트가 있다. 영화 ‘카트’((2014년, 부지영 감독)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나는 P와 카트를 끌었다. 지금은 떠나간 P대신 그와 다니던 마트에서 소림이와 카트를 끈다. 나는 울면서 카트를 끌고 투쟁하는 영화 속 여사님들이 더 이상 아니다. 자가용은 없어도 나와 소림에겐 즐거운 쇼핑 카트가 있다. 영화 ‘카트’((2014년, 부지영 감독)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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