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실증적 증거가 없지만 우려 커져

우먼타임스 = 심은혜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요 유엔여성기구(UM WOMEN),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가정폭력, 젠더 기반 여성폭력의 연관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가정폭력 등이 증가했다는 실증적 증거가 없어 이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편이다. 

유엔여성기구가 작년 11월에 발표한 ‘코로나19 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2명 중 1명은 어떤 형태로든지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유엔여성기구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3개 국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여성 4명 중 1명은 집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으며, 코로나19 이후로 가정 내 갈등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또 집 밖에서도 폭력에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5명 중 3명은 코로나 기간 동안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이 더 심해졌다고 응답했다. 

반면 국내는 가정폭력 사건의 뚜렷한 증가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청이 발간한 ‘치안전망 2022’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4만5619건이었다. 이후 증감을 반복하다 2019년에는 전년 대비 8153건(19.5%) 증가해 4만9873건을 기록하며 최근 5년간 최대 검거 건수를 나타냈다. 

그러다 2020년에는 다시 5414건(10.8%) 감소해 4만4459건의 검거 건수를 기록했고, 2021년 9월 기준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총 3만357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건(0.17%) 감소했다.

이처럼 가정폭력 검거 건수 추이를 봤을 때는 코로나19 상황과 가정폭력 사건 간의 뚜렷한 상관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강간‧강제추행 등은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재난 발생 시 폭력이 증가한 사실은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국가별 실증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증적으로 대형 재난 시기 젠더 기반 여성폭력은 대체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정폭력과 성폭력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 재난 사례 살펴보니, 폭력 사례 증가

2005년 미국 남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당시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와 수천 명의 실종자 및 사망자를 발생시켜 미국 역사상 최대 대참사로 불린다. 조사에 따르면 당시 주요 피해지역 거주민들이 경험한 파트너로부터의 신체적 폭력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98%), 정서적인 폭력을 경험한 경우도 35% 이상 높았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준 피해. (pixabay)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준 피해. (pixabay)

3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0 아이티 대지진 이후에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신체적, 성적 폭력 발생의 가능성은 모두 증가했다. 

173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대규모 이주를 낳았던 2009년 호주 빅토리아주의 대규모 덤불 화재 이후 젠더폭력 경험을 살펴보는 연구에서, 인터뷰에 응답한 여성들은 모두 재난 이후 지역사회 내 폭력과 가정폭력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1만8000여명의 사망자 및 실종자가 발생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대피소에 거주하던 다수의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이 10년 만에 밝혀지기도 했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은 “감염병 관련 재난 상황에서는 감염병에 걸릴 위험과 젠더기반 폭력을 경험할 위험이 중첩된다”고 말했다. 

유럽성평등연구소(EIGE)는 코로나19와 연관된 과거의 팬데믹 및 자연재해에 대한 위험요인으로 경제적 요인, 감염병적 요인, 대응조치로 인한 요인을 제시했다. 

EIGE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은 경제적 불안정성과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성, 그리고 이동 제한 등 사회적 대응조치를 야기하는데, 이는 가해자의 행동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 서비스 접근성에 모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결과 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취약성과 공포는 증가하고, 가해자를 떠나기 어려워지고, 가정과 자녀에 대한 책무는 증가하고, 고립은 강화된다. 또 이와 연관된 결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스트레스 수준의 증가, 폭력 빈도의 증가, 폭력 정도의 심화, 여성 살해 등의 현상이 야기된다는 설명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재난이라는 사회적 위기는 가정폭력을 사소한 일, 개인화된 사건으로 여기는 오래된 통념과 위계화된 위기 대응 인식을 강화하고 정당화시키는 데 일조한다”며 “성평등, 민주주의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은 최우선적 과제인 재난 복구의 뒷순위로 밀려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고 말했다.  

2009년 호주에서 발생한 덤불 화재 이후 재난의 복구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대부분 재난으로 인해 정당화됐다. ‘숨겨진 재난: 자연재해 이후의 가정폭력’(2013)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폭력은 젠더 기반 폭력이 아닌, 재난으로 인한 상실감, 절망, 우울로 인한 우발적이고 일탈적인 사건으로 여겨졌고, 재난의 피해자인 폭력 가해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부연구위원은 “연구에 따르면 일부 남성들은 재난으로 인한 남성성과 지배력의 상실을 여성에 대한 폭력 행사로 상쇄시키려 시도한다”며 “팬데믹으로 인한 주체됨의 상실과 기존의 남성성을 뒷받침하던 사회 질서에 야기된 혼란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위기를 가져오고, 이는 폭력을 수단으로 남성성 획득을 시도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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