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갈래?” 이 제안은 여행길에 갑자기 펼쳐지는 바다처럼 등장했다. 외할머니, 셋째 이모, 외삼촌 세 사람이 당일치기로 군산에 놀러 간다고 했다. 외삼촌이 말했다. “소영이 너도 갈래?” 갈비를 뜯다 말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소림이 뒤치다꺼리만 하다 올 텐데, 안 가.” 셋째 이모가 수를 냈다. “가다가 예니 집에 소림이 내려주면 되지, 은지랑 소림이 잘 놀잖아.” 예니는 내 사촌 여동생이고 예니의 딸인 은지는 소림의 동갑내기 육촌이다.

그날이 왔다. 만나자마자 은지 손을 잡고 달려가는 소림의 뒷모습에 대고 나는 “잘 놀아” 소리쳤다. 돌아서는 내 얼굴엔 희색이 만면하고. 목적지는 상관없다! 내 한 몸 이끌고 차 타고 떠난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어디를 가나 우리 모녀는 함께였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 홀로 여행’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늘 나랑 같이 다니기를 원했던 소림은 아홉 살이 된 올해 처음으로 분리 신청을 받아주었다.

외삼촌이 틀어주는 올드팝을 들으며 차창 밖 전원을 감상하니 뮤직비디오가 따로 없다. 에릭 카멘의 ‘All by myself’, 일명 ‘오빠 만세’의 클라이맥스 “don't wanna live all by myself any more~”에 맞춰 하늘 높이 철새 떼가 나타났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오프닝 장면이 자동 재생된다. 새해 첫날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이 부분을 립싱크하던 브리짓. 철새들이 “우리는 함께인걸?” 보란 듯이 V 편대로 날아간다. 그때 누군가 “기러기인가?” 했고, 나는 라이너 쿤체의 <뒤처진 새>를 생각했다.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페이스북 친구 포스팅에서 이 시를 처음 만났다. 그 마음을 시인은 어찌 알까? 뒤처진 적 있어 아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뒤처진 새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박물학자 밀튼 올슨에 따르면, 이동하는 거위 무리 중 하나가 총 맞고 추락하면 두 마리가 따라 내려가 회복을 돕고, 다친 새가 다시 날거나 혹은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킨다고 한다. 또한 동료가 뒤처지면 한두 마리가 그의 곁으로 가 날갯짓 박자를 맞춰 준다고 하니 철새의 의리란! 히치콕의 <새>에 거품 무는 내가 현실의 새를 동경하는 이유다.

나의 단골 사진 포즈 V는 철새 대형의 V다. 해마다 수천km를 날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철새야말로 승리의 표본 아닐까? 경쟁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고비마다 포기하려 했던 과거의 내가 “I’ll be back!” 엄지를 들어 보이며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철새 무리는 왜 V자 대형으로 이동할까? 공기 부양력 때문이다. 새의 날갯짓은 아래위로 난기류를 만든다. 뒤따르는 새가 앞서가는 새의 날갯짓이 만든 하강기류를 피해 상승기류를 타는데 V자는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최소 에너지로 비행하기에 최적화된 대형이다. 그렇다면 뒤 배열 새들은 거저먹는 것이냐? 그럴 리가. 선두가 지치면 두 번째 대열의 새가 앞으로 나서고, 끝쪽 새들은 끼룩끼룩 응원가를 보낸다. 환상의 팀워크가 단독 비행 대비 70% 이상의 먼 거리 이동을 실현한다. 철새의 이동 원리에 감읍한 어떤 아프리카인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 셋째 이모, 외삼촌 무리에 나도 껴 있다. 우리 넷에게는 배우자가 있다가 없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싱글맘 선배들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쭉 존경하는 인물란에 외할머니를 써 왔다. 강경의 철새 리더인 외할머니는 4녀 1남을 데리고 상경해 오랜 세월 백반집을 꾸려 나갔다. 남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싱글맘의 삶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클리셰로 범벅된, 생활력 강한 아내를 둔 남자의 이야기 속 주인공 같았다. 빚보증을 잘못 서는 등 할머니의 속을 새까맣게 태운 할아버지는 10년간 중풍을 앓다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비보를 접한 곳은 둘째 딸(나의 엄마)과 함께 떠난 첫 해외 여행지 호주에서였다, 그것도 도착한 날에.

할머니가 날갯짓을 힘들어하자 딸들과 아들이 번갈아 가며 선두를 지켰다. 그들은 때로 나도 지켜주었다. 사냥꾼의 총에 맞은 내가 땅으로 처박혔을 때 회복을 도와 다시 대열로 돌아가게 해주었고, 꽁무니에서 낙오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되돌아 와 날갯짓을 맞춰 주었다. 누구 하나 아픔 없는 인생이 없었다. 완벽한 사람이 선두에 서는 것이 아니다. 경험 많고 바람에 저항하는 자가 무리를 이끈다.

경암동 철길 개나리색이 칠해진 가게에서 소림에게 줄 기념품을 샀다. 군산에서 촬영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원사진관이 그려진 자석인데 나는 사계절 버전 중 겨울을 골랐다. 영화에서는 겨울을 함께 나지 못한 정원과 다림이다.

횟집에서 할머니가 사주는 화려한 밥을 먹었다. 나를 이룬 성분 중 외할머니의 라면도 있다. 아홉 살 때 한 달 정도 백반집 2층에 자리한 외할머니댁에 머물렀다. 나는 식당 옆 가게 좌판에서 머리핀과 반지 따위를 구경하다가 할머니에게로 달려가 라면을 끓여달라곤 했다. 할머니는 들통에 배춧국을 끓이다가도 찌그러진 황금빛 양은 냄비를 불 위에 올려 쇠고기라면을 끓였다. 마지막에 계란 탁 넣자마자 초록 그릇에 내오셨는데 지금도 판매하는 그 라면은 어떻게 끓여도 할머니의 라면 맛이 안 난다.

우리는 사파리 체험하듯 차로 군산 한 바퀴를 돌았다. 먼 여행지를 하루 안에 다녀가려면 그곳에 성글게 스며들다 와야 한다. 바다가 보이면 차에서 내려 바닷바람 잠깐 쐬고, 무성한 갈대밭이 나타나면 풍덩 뛰어들어 사진 찍고 하는 식이었다. 올해가 미수(米壽)인 외할머니의 걸음에 맞춘 이 소풍은 내게도 잘 맞았다. 외삼촌은 내비게이션 없이도 길을 척척 찾아간다. 새의 체내엔 생물나침반이 있다. 그것이 지구의 자기장과 반응하여 철새는 길을 잃지 않는다. 매년 항로가 같다. 삼촌의 몸 안에도 나침반이 있단 말인가!

할머니가 반건조 박대를 사 주셨다. 군산에서 박대는 박대는커녕 사랑을 독차지하는 어류다. 서대의 사촌 격인 박대는 껍질이 질겨서 그것을 벗겨 말린다. 박대가 옅은 분홍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다. 이를 소금물로 씻어 벌레도 상할 위험도 없는 겨울 볕에 말린다. 셋째 이모가 박대는 비리지 않고 간이 되어 있으니 그대로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된다면서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납작한 박대는 밴댕이 저리 가라 속이 좁다. 셋째 이모랑은 완전 반대다. 어릴 때부터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들어줌으로써 위로해주던 셋째 이모는 마지막 코스였던 선유도의 너른 바다와 그 해면의 반짝이는 윤슬을 닮았다.

서울로 방향을 돌리자 농가의 한 밭이 나타났다. 으악, 저게 다 뭐야? 우리는 한목소리로 외쳤다. 마른 밭이 온통 까맸다. 까마귀 떼다! 나는 까만 밭을 끝까지 돌아보았다. 까마귀를 보고 할머니는 흉조라 했고 이모랑 나는 그건 미신이라 주장했다. “할머니, 호주에서는 우리가 길조라고 부르는 까치가 공원에서 신문 보던 할아버지 눈을 마구 쪼았대요.” “그려? 그 까치만 돌았나베!” 깍깍깍! 멀리서 까마귀 떼의 폭소가 터졌다. 조금 뒤면 금강호가 낙조로 물들 것이다.

겨울이 가는 2월 군산 선유도의 한가한 정경. (필자 촬영)
겨울이 가는 2월 군산 선유도의 한가한 정경. (필자 촬영)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우먼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