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119죠!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냐면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작년 12월이었다. 그날 나는 딸 소림이와 함께 합정역에서 ‘전 시어머니’인 은옥 엄마(은옥이라는 이름의 그녀를 나는 ‘엄마’라고 부른다)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전 시부모님과 우리 모녀는 한 달에 두세 번 시간을 보내왔으니까. 해서,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의 료타와 케이타 부자처럼 두 분과 나는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부모 자식 사이가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신기해하고 당사자들에겐 자연스러운 관계,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

이곳은 시청역 플랫폼.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은옥 엄마가 플랫폼 벤치에 쓰러졌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새하얘졌다. 119센터에서는 연말이라 최대한 가까운 소방서의 구급차를 보내도 20분은 걸린다 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그 20분은 억겁의 시간이었다. 엄마와 소림이가 불안해할까봐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엄마 옆을 지켰으나 바들바들 떨리는 내 몸만은 통제권 밖이었다. 다행히도 구급대원들이 도착할 때쯤 엄마는 안정을 되찾았고, 간단한 질의응답 후 우리는 다시 엄마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지상으로 나오자 캐럴이 울려 퍼졌다.

택시를 탔다. 소림과 엄마 사이에 앉자마자 눈물이 터지려 해 나는 둑을 쌓는 데 용을 썼다. 그때 은옥 엄마가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고, 나는 엉거주춤 오른손으로 엄마 등을 토닥였다. 그 순간의 그녀는 내 아기였다. 도리 없이 나는 둑 쌓기를 멈추고 눈물을 흘려보냈다. 무서웠다. 은옥 엄마가 죽는 줄만 알았다. 시청역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엄마가 사라지면 나는, 나는 이제 어떡하지?’ 이 생각뿐이었다. 나는 우주 제일의 이기적 인간이다.

결혼하고 남편보다는 시어머니로 인해 행복했다. 우리 고부는 죽이 잘 맞았다. 극장으로 서점으로 전시회장으로 같이 잘도 다녔다. 은옥 엄마에겐 지병이 있었나니 그 병명은 ‘다정’이다. 역정 내는 법 없이 미소로 자식을 품는 그녀는 천사였다.

그런 시엄마가 자식에게 화내는 걸 딱 한 번 목격했다. 소림이 태어난 직후 남편이 이혼을 선언하자 은옥 엄마가 퇴근길에 찾아온 것이다(은옥 엄마는 일흔을 앞에 둔 지금까지도 일하고 있는 멋진 여성이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거실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통곡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아들을 붙들고 소리치는데 내 눈엔 통곡이었다. 그녀는 화내는 데 서툴렀고 송아지처럼 울었다. 아기 소림을 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문제 발생 후 처음으로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연민을 품었다. 화도 잘 못 내는 시어머니가 안쓰러웠다. 꼭 나 같았다.

(시)아버님은 지금껏 아들을 외면 중이고, 은옥 엄마도 아들을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그렇게 지내고 있다.

우리 만남의 명목은 소림이가 조부모님께 받아야 할 사랑을 누려야 함이고, 숨은 이유도 있다. 처음부터 함께하진 않았다. 얼마간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았으므로 두 분이 손녀를 보고자 하면 소림이만 보냈다. 두 분을 보면 소림 아빠가 떠올라 괴로웠다. 두 분은 한때 한 서류 안에 존재했던 나의 눈치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흘렀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를 내버려두기로 하자 내 두 다리는 기다렸다는 듯 두 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친정 부모님이 각자 재혼한 뒤로 편히 찾아갈 곳 없는 나는 은옥 엄마 밥을 먹겠다고 딸을 앞세워 전 시댁을 찾아간다. 은옥 엄마 밥상 앞에서 버리는 자존심은 아깝지 않았다.

기묘한 이 가족은 8년 동안 안 해본 게 없다. 십수 번의 여행, 대공원 소풍, 수목원 나들이, 맛집 탐방 등등 아버님의 구형 하늘색 SM5를 타고 그야말로 하늘을 날 듯 하하 호호 즐거운 비행을 해 왔다. 뒷좌석에 소림과 나란히 앉아 아버님이 틀어주는 동요를 따라 부르다 보면 딱 엄마 아빠랑 소풍 가는 기분이 든다. 그때만큼은 모녀는 자매가 된다.

창밖이 온통 하얗다. 마침 읽고 있는 시의 배경이라도 되어주듯, 눈보라다.

“눈보라 속 저쪽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저 사람 역시 지금 ‘눈보라 속 저쪽에서 사람이 걸어온다’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무릎보다 높이 쌓인 눈. 사람이 가까스로 빠져나갈 만한 좁다란 길 양쪽에서 나와 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걸어가는 거다. 사람들은 언제 마주 스치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시작됐는가? 하여튼 둘은 서로 다가간다. 지상에 단둘이만 남겨져 버린 것처럼 마침내 마주친 그 순간, (후략)” -사이토 마리코의 시 ‘눈보라’ 중에서

함박눈이 내리던 몇 해 전 겨울날, 그날도 나는 소림의 손을 잡고 은옥 엄마에게로 향했다. 은옥 엄마에게 가려면 경복궁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인왕산 수성동 계곡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거기가 종점이다. 가파른 언덕에 주차한 마을버스에서 내린 모녀의 몸은 여전히 기울여진 채다. 잽싸게 우산을 폈다. 눈발이 거세 한 치 앞이 안 보였다. 이제 5분 정도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해야 은옥 엄마 집이 나올 것이었다. 이런 날은 길에 사람이 없다. 오직 눈, 눈, 눈.

“엄마, 눈이 자꾸 내 눈으로 들어와, 헤헤.” 소림만이 신났다. “소림아, 엄마 손 꼭 잡고 천천히 걸어야 해.” 아이의 잡다한 물건이 잔뜩 들은 배낭을 바투 메고 한 걸음 옮겼을 때였다. 눈보라 속 저쪽에서 우산 하나가 걸어온다. 아니, 그것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얘들아!” 하고 소리치는 우산은 없을 테니. 눈보라 속 저쪽에서 오는 사람은 그녀, 언제나 은옥 엄마다.

나는 어버이날이나 생신 때 카드를 써 드리는데 그때마다 우리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런 날이면 잠들기 전 은옥 엄마로부터 문자가 온다.

“소림이랑 네 덕에 우리 부부가 웃고 산다. 너희가 없으면 얼마나 쓸쓸할까. 나도 고마워. 사랑해.”

엄마에겐 내가 눈보라 속 저쪽에서 걸어온 사람이었다. 우리는 눈보라 속에서 서로에게 가는 줄도 모르고 걸어와 마주쳤다. 어색했으나 하여튼 둘은 서로 다가갔고, 지상에 단둘이만 남겨져 버린 것처럼 마침내 마주친 그 순간, 두 여자는 팔짱을 끼고 같이 걸었다. 팔짱은 고리다. 입장의 차이와 갈등을 벗어던진 여성으로서의 연대! 어디든 그들이 가는 곳이 옳은 방향일 것이었다.

역시 그랬다.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소멸과 탄생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초신성이 폭발한 순간 지구의 역사가 시작됐고, 혼인서약서의 소멸이 새 가족을 탄생시켰다. 이 가족은 지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는 길이다. 나는 오늘도 소림이랑 자매처럼 앉아 두 분의 뒷머리를 보고 있다. 8년 전보다 머리숱이 줄었다. 빈 정수리로 당신들의 아들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그 순간 아버님이 농담을 던졌고 모두는 깔깔 웃었다. 농담 같은 가족,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혈연과 혼인관계 등으로 한 집안을 이룬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 한 집안이 부서져도 가족일까. 한때 가족관계증명서에 함께 있던 시부모님과 나는 오늘도 딸아이를 데리고 깔깔대며 놀러가고 있다. 이 복잡한 세상엔 새로 태어나는 가족 형태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의 탄생’은 영화로, 드라마로, 연극 제목으로도 쓰였다. 2006년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 포스터.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혈연과 혼인관계 등으로 한 집안을 이룬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 한 집안이 부서져도 가족일까. 한때 가족관계증명서에 함께 있던 시부모님과 나는 오늘도 딸아이를 데리고 깔깔대며 놀러가고 있다. 이 복잡한 세상엔 새로 태어나는 가족 형태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의 탄생’은 영화로, 드라마로, 연극 제목으로도 쓰였다. 2006년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 포스터.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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