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 인생 리셋할 거야.”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으므로 얼마간 나는 이 문장을 흥얼거렸다. 2절까지 끈질기게 불러 중독된 노래방에서의 마지막 곡처럼(대체로 떼창이라 중독되는 것이다). 그러나 십 분 후면 페이드아웃 되는 노래와 다르게 그의 말은 좀체 떨어지질 않았다.

처음에는 혀에만 붙어 있던 그것이 속으로 속으로 파고드나 싶더니 한순간 내 심장에 딱 붙었다. 영악한 문장이었다. 심장에 붙어살면 힘들이지 않아도 피와 함께 온몸으로, 심지어 뇌까지 쭉쭉 뻗어나갈 터였다. 소림에게 젖병을 물릴 때나 아기를 재우고 멍때리는 순간에나 그것은 쭉 내 안에 있었다. 기생충이다. 한동안 그 기생충의 숙주는 ‘화기(火氣)’였다. 나를 독방에 가두고 본인은 인생을 다시 세우겠다? 나는! 나는!

몇 년이 흘렀을까. 나는 고요해졌다. 이 고요는 불쑥 튀어나온 한 기억에 기인한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아 어느 새벽 나는 일곱 살의 아침으로 돌아가 있었다. 생애 최초의 기억을 잃은 지금, 이것이 최초의 기억이다. 나는 1985년 그 아침의 장면을 내 인생의 오프닝 시퀀스로 삼겠다(모든 영화가 주인공의 출생 장면으로 시작한다면 영화는 예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일곱 살 적엔 아이 혼자 등원하는 풍경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그날도 유치원을 돌아서 갔다. 잘 다니지 않는 길로 돌아가면 무지개 유치원 아닌 꿈속의 그 유치원이 눈앞에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전날 일을 떠올리니 죽고 싶었다(어린이도 죽고 싶을 수 있다).

그림책을 들고 나무 의자에 앉은 미미 선생님 앞에 우리는 옹기종기 앉았다. 한창 이야기를 듣는데 방귀 냄새가 났고, 아이들은 7세 특유의 과장된 말투로 “으악 냄새! 누구야?” 호들갑을 떨었다. 악동 중의 악동 원석이가 엉덩이마다 코를 대고 다녔다. 그러더니 내 차례에서 “얘다 얘!”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와하하 웃었고 나는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숙였다. 집으로 걸어갈 때 비로소 질질 짰다.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진짜로 아니었으니까!

유치원에 가기 싫었던 나는 왼쪽 길로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직진해 언덕을 올랐다. 언덕 꼭대기에는 왼쪽으로 난 높고 가파른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을 내려가면 원래 다니는 길과 만났다. 그것은 반듯하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돌 그대로의 계단이었다(다음에 일어날 일과의 연관성은 크지 않다).

나는 왼발인지 오른발인지를 첫 계단에 내디뎠다. 삐끗했고, 맨 아래까지 데굴데굴 굴렀다. 데굴데굴? 데굴데굴은 영 못마땅하다. 추락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절벽은 아니었지만 분명 추락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엎어진 채로 눈만 껌벅이며 눈앞의 이끼를 바라보았다. 보이는 게 이끼였으니 보이는 대로 본 것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돌계단 틈 사이사이 이끼가 껴있었다. 나는 이끼라는 말을 몰랐으므로 돌에 이불 같은 풀이 붙어 있네, 정도로 인지했는데 머리가 띵하면서 곳곳의 통증이 밀려왔다. 코피도 조금 났다. 철 냄새와 축축한 이끼 내음이 뒤섞였고 이 모두는 비렸다. 인생의 쓴맛보단 비린 맛을 안 순간이었다. 아무도 없거나 누군가 모른 척했다. 나를 동정할 리 만무한 개미만 기어갔다. 울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거나 누군가 모른 척해 울음을 꾹꾹 누르며 나는 절뚝...절뚝...무지개 유치원으로 향했다.

이날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해탈한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다. ‘해탈’의 경건성에 망설여져 ‘처럼’이라 했을 뿐 그때의 나는 실로 평온했다. 그 상태가 지속되진 않았지만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왜지? 생각했고 바로 도출됐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추락과 비린 맛을 알았다. 그때부터 부모님의 불화가 보이고 오빠한테 자주 얻어터졌으니 우울은 나의 일상이요 벗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상대적 효과로 한번 행복할 때 미치게 행복했다. 그러다가 다정한 남편을 만나 행불행의 비율이 뒤바뀌었고 14년 뒤 원 비율로 회복했다. 낙차가 클수록 불행해진다. 행복 피라미드의 브라만이었던 나는 일순간 수드라가 됐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적응의 동물이다! 하여간 끝내준다, 그 능력 하나는.

드디어 독방에서 풀려났다. 독방에 나를 가둔 이는 그 아닌 자기연민이었다. 자기를 감옥에 가두다니 어리석으나 과도기를 생략하고 나를 찾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야말로 진정한 리셋을 완료했다. 기계의 리셋은 몇십 초면, 길어봤자 하루면 되지만 인간의 초기화는 지긋한 시간을 요한다. 인간에게 초기화란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치는 것이 아니다. 해석하고 초월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에서 무사 수행 중인 큐타가 숲속 현자에게 강함이 무어냐고 물었다. 현자가 대답한다. “나한테 묻는 건 번지가 틀렸다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돌처럼 여기 앉아있기만 할 뿐이니. 시간을 잊고, 세상을 잊고, 자신까지 잊고,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서지. 이것이 다름 아닌”,에서 멈춘 그는 돌이 됨으로써 말을 맺는다. 그러므로 방금 내가 쓴 문장 ‘리셋을 완료했다’는 퇴고 대상이다. 리셋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소요 시간은 ‘평생’이다.

하지만 나는 일개 중생이다. 아침마다 눈도 겨우 뜨는 내가 무슨 수로 돌이 된단 말인가. 모름지기 쉽게 가야 한다. 나의 리셋은 이거다. “살아 있기에 오늘을 새로이, 열심히!”(주의: 나쁜 머리로 오직 열심일 경우 어느 그룹에서든 민폐 덩어리 될 가능성이 크므로 한평생 공부에 정진할 것을 (누구보다도 나에게) 권고하는 바다). 내 안은 명예욕으로 펄펄 끓고 있지만 실상 명예 따위 없어 번뇌 중이다. 그러니 누가 비웃거나 말거나 나는 사는 동안 명예를 꿰차야 한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김영민 교수도 말하지 않았는가.

“선학들은 말했다, 죽은 자에게 찬사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그렇다. 죽은 자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에 사후의 명성 따위는 당사자에게 가치가 없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죽은 자신에 대해 슬퍼할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음, 그러하다. 죽기 전에 생생히 다 느끼고 싶다(욕망덩어리인 나는 역시나 돌이 되긴 글렀다).

가끔 그 돌계단을 생각한다. 돌계단을 찾아가 구르고 싶기도 하다. 굴러버리고선 새로 난 상처로 이전의 모든 구차하고 번잡한 것들을 삭치고 싶다. 일곱 살의 나는 울음을 꾹꾹 눌렀으나 지금의 나는 양발 스트레칭 자세로(어차피 八자까지만 가능하므로 완벽한 떼쟁이 자세 구현 가능) 제대로 앉아 꺼이꺼이 목놓아 울 것이다. 내 몸 구석구석을 점령한 이끼를 모조리 떼고 시원-하게!

일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2015년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 괴물의 손에 길러진 소년 큐타의 이야기다. 성장한 그는 인간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새로운 가족의 형태 같은 소중한 것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2015년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 괴물의 손에 길러진 소년 큐타의 이야기다. 성장한 그는 인간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새로운 가족의 형태 같은 소중한 것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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