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에서의 나는 새벽마다 구역질을 해댔다.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어김없이 내 방을 점령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엄마 엄마 하면서 훌쩍였다. 우니까 제왕절개 부위가 뒤틀리며 아팠다. 흉터 밴드를 들추자 가로로 길게 난 핏빛 칼자국이 선명하다. 엄마의 나무 도마에 난 수많은 칼자국 중 하나를 떼어다 붙인 것 같았다.

미역국을 좋아하는 딸내미 때문에 엄마는 자주 미역을 불렸다. “미역국이 그렇게 좋아? 아이고, 우리 소영이 미역 장수한테 시집 보내야겠다!” 도마 위에 고기를 놓고 칼질 중인 엄마 옆에 딱 붙어 입을 헤벌린 내게 건넨, 웃음 섞인 엄마의 이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 목소리를 껴안고 통곡하고 싶었으나 그것에겐 몸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나 아기 엄마 못 하겠어. 엄마가 아들보다 사랑하는 사위한테 다른 여자가 있대. 한 달 전에 알았어” 다 털어놓고 엄마 밥을 꾸역꾸역 먹고 싶었다. 다 먹어 치운 내가 꺼억 트림 한 번 해주고 나면 체증이 내려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가 정말로 떠나버릴 테니 나만 아는 비밀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상도 하지. 미역국 킬러인 내가 삼시세끼 나오는 미역국을 반가워하기는커녕 구역질을 해대다니. 식당 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재잘대는 산모들 틈에서 숟가락으로 미역국만 휘휘 젓는데 옆 산모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얼굴 하얗고 갈색 머리를 한 아기의 엄마 맞냐고, 어쩜 아기가 그리 하얗냐고 서양 아기 같다고. 대답하려고 고개를 돌리니 미역국을 쉴 새 없이 떠먹는 그녀의 입이 보였다. 불쑥 신물이 올라왔다. 나는 내가 엄마 맞다고 답하고선 유령처럼 사라졌다.

내가 엄마가 맞긴 한 걸까? 방에 들어가자마자 거울을 봤다. 나도 얼굴이 하얀지 머리가 갈색인지 보려는데 초점 잃은 눈동자가 먼저 보여 그만 침대에 누웠다. TV를 켜니 월드컵으로 떠들썩하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산모들이 떠들썩하다. 왜 다들 떠들썩한지 어째서 축제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종일 미역국 끓이는 냄새라니, 이 건물을 식칼로 툭툭 썰어 국으로 끓여내고 싶었다.

시간이 됐다. 방 전화가 울린다.

- 여보세요.

- 엄마, 아기 젖 먹일 시간이에요.

- 아기가 제 젖을 못 물어요. 분유 타서 갖다주세요. 지금 미리 짜 놓은 모유도 없어요.

아기를 안고 들어오는 도우미의 얼굴은 늘 아기를 물고 오는 황새의 날개처럼 활짝 펴있다. 그러나 이내 무표정으로 맞이하는 산모와 비슷한 표정이 된다.

아기 머리를 내 왼쪽 팔에 대고 안아 젖병을 물렸다. 오밀조밀 작고 붉은 입술로 쪽쪽 잘도 빤다. 얼마나 열심히 먹으면 이마에 땀이 다 송송 맺힐까 풉 웃음이 났다. 아기도 배냇짓을 한다. 너, 생명체가 맞긴 하구나. 너와 나... 친해질 수 있을까?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흘러갈까. 우리 둘이서만 살게 될까? 하는데 저녁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났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고, 아기는 울기 시작했고, 수술 자국이 아팠다.

아직은 불편한 사이의 이 모녀는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더 불편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유일하게 좋은 점은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불편한 동거는 두 달 남짓 이어지다가 결국 끝이 났다. 남편이 떠나자 둘이 되었다. 나는 우울증에 대항하면서 어떻게든 아기를 씻기고 먹이고 재웠다. 영문 모를 아기 울음이 밤새 이어질 때면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꽝꽝 쳤다. 무협영화에선 가슴 어디 급소를 치면 즉사하던데 실제로는 멍만 들었다.

샤워하는 동안 아기를 봐 달라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서부터 씻는 일이 고역이었다. 아기가 잠들어야 번개 샤워를 할 수 있었는데 샤워기만 틀면 아기 울음이 물소리를 뚫고 고막을 때려 나는 샤워볼에 거품을 내다 말고 후다닥 튀어 나가기 일쑤였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아기가 울지 않을 때조차 환청을 듣고 뛰쳐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곤히 자는 아기 옆에서 벌거벗은 내가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고 서 있다 보면 눈물도 뚝뚝 떨어졌다.

한가한 샤워를 즐긴 후 머리의 물기를 터는데 식탁 위에 엄마가 해 온 깻잎장아찌며 멸치볶음이며 밑반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 양푼 속에서는 미역이 불리고 있었다.

- 엄마, 웬 미역이야?

- 너 좋아하는 미역국 해주려고 가져왔지. 고기도 끝내주는 걸 사 왔어.

소림을 어르면서 엄마가 말했다.

- 얘기했잖아, 나 미역국 못 먹겠다고. 도로 가져가.

내가 울상을 짓자 엄마는 늘 그렇듯 단순하면서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다.

- 네가 엄마 미역국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산후조리원 실력이 형편없었던 것뿐이야. 머리 다 말렸으면 소림이랑 놀고 있어 봐봐.

엄마는 내 품에 소림을 안기더니 소매를 걷어붙이고 칼질을 시작했다. 고기를 썰고 물기 짠 미역을 썬다. 내가 낸 도마 위 칼자국에 엄마의 칼자국이 크로스 됐다. 내 것은 소심했다. 엄마의 것은 야무지고, 무심해서 당찼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김애란 ‘칼자국’ 중에서)

엄마는 미역과 고기를 냄비에 넣고 참기름 뿌려 달달 볶았다. 모든 과정이 거침없다. 내 코가 벌름거리고 엄마의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진 내장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내 새끼는 내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라고. 내가 내 엄마의 칼자국들을 먹고 괜찮아졌던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엄마의 등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뻐근했다. 내 가슴에 소림의 손을 가져다가 댔다. 그러고 보니 아랫배 흉터의 통증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소림이가 빠져나온 빛의 문으로서만 위풍당당 새겨져 있다. 내가 먹어 온 우리 엄마의 칼자국처럼.

엄마는 고기를 썰고나서 불린 미역을 썰었다. 내가 낸 도마의 칼자국에 엄마의 칼자국이 얹힌다. 엄마의 칼자국은 야무지고 무심해서 당찼다.   
엄마는 고기를 썰고나서 불린 미역을 썰었다. 내가 낸 도마의 칼자국에 엄마의 칼자국이 얹힌다. 엄마의 칼자국은 야무지고 무심해서 당찼다.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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