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발생한 경기 의정부시 아파트 화재 때 홀로 네 살 아들을 키우던 20대 여성이 중화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엄마 품에 안겨 탈출한 아들은 무사했지만 갈 곳이 없어 보호기관에 머물고 있다. 졸지에 모자가 생이별을 했지만 어린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네 살 아들 품에 안고 불길 뚫은 싱글맘’-동아일보 2015년 1월14일)

이혼 후 아침에 눈뜰 때면 명치에 주차된 3톤 트럭부터 치워야 했다. 호흡은 의식의 영역이 아니거늘 나는 들숨 날숨을 3초씩 세며 쉬었다. 트럭을 처리하면 어김없다. 두 번째 관문 시작, 천장이 하강한다. 내 쪽으로 서서히 내려오던 천장은 명치 직전 멈췄다. 거기에서 나를 응시하는 천장과의 독대는 트럭보다 더한 압박을 줬다. 내가 다시 숨을 몰아쉬자 천장은 만족해하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옆에서 소림이가 젖병 내놔요, 기저귀 갈아주세요, 버둥댄다. ‘싱글맨’의 조지가 될 시간이다.

“잠에서 깰 때, 잠에서 깨자마자 맞는 그 순간, 그때에는 ‘있다’와 ‘지금’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동안 가만히 누운 채 천장을 쳐다본다. 이제 시선이 점점 내려오고, ‘내가’가 인식된다. 거기서부터 ‘내가 있다’가, ‘내가 지금 있다’가 추론된다. (...) ‘지금’은 단순히 지금이 아니다. ‘지금’은 잔인한 암시다. 어제에서 하루가 지난 때, 작년에서 한 해가 지난 때, ‘지금’에는 날짜가 붙는다. 지난 ‘지금’은 모두 과거가 된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맨’ p.7)

모든 ‘지금’이 64배속으로 흘러가고, 추적된 적 없는 소행성과 충돌하기를 염원했다. 우울증은 검색창에 특정 단어를 자주 치게 했다. 그때마다 초록 창은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면서 나에게 1393(당시 1577-0199)을 안내했다. 나는 핸드폰을 침대 위로 패대기쳤다(그러고 보면 현실감각이 아예 없진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내 입에선 ‘소중’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소중한 소림, 소중한 내 아가, 너에겐 나뿐이지 엄마가 잘할게. 매정한 아침만이 1393의 시간이었다.

소림과 맞이하는 첫 겨울이 왔다. 무기력하여 매일 목욕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어려웠지만 ‘아기는 목욕하면서 큰다’했던 누군가의 말이 물을 받게 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목욕을 시킬 때마다 ‘우울증 엄마’라는 죄책감이 깎여 나갔다. 진짜배기 엄마가 감각되어 안도했다.

30년도 넘은 그 전셋집은 겨울이면 욕실에서도 입김이 났다. 할 수 없이 거실에 대야를 갖다 놓고 소림을 씻겼다. 목욕을 마치고 소림 얼굴에 로션을 바를 때면 나는 웃었다. 반짝여 별 같아진 얼굴이다. 별도 나를 보고 웃었다.

목욕물을 버리려고 대야를 들었다. 무릎까지 들었을 때 허리가 찌르르해 나는 그대로 넘어갔다. 부지불식간에 얌전한 시체 꼴로 눕혀진 나는 눈만 껌벅껌벅 천장을 마주했다. 쏟아진 목욕물이 등 밑으로 흘러들어온다. 천장아, 오랜만. 그러자 천장이 대답했다. “어바버버”. 앗, 소림이!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고, 악 소리 내며 원상태로 돌아갔다. 등으로 기어가 핸드폰을 집었다. 지금은 귀농하셨으나 그때만 해도 옆 동네에 살고 있던 엄마께 소림이를 부탁했다.

소림이가 사라진 세계는 묵음이었다. 고요가 엄한 생각을 끌고 오는 것이 보여 더듬더듬 TV 리모컨을 눌렀다. 뉴스를 들으면서 허리를 살살 움직이는데 기다리던 소식이 나왔다. 그녀가 제발 살았기를!

“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재롱을 피웁니다. 이 아이는 지난 10일 화염 속에 엄마와 함께 구조됐습니다. 아이는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엄마인 스물 두살 나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2주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어젯밤 숨졌습니다. 친구들 몇 명만이 가족 대신 빈소를 지켰습니다. 나씨가 고아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는 곧 보육시설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의정부 화마가 세상에 단 둘뿐인 이들을 갈라놓았습니다. 고아로 자란 이 여성이 숨지면서 다섯 살배기 아들 역시 고아가 돼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습니다.”

영정사진 속엔 긴 머리를 한 앳된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네 살 아들을 품고 불길 속을 탈출했다. 아들은 화상을 입지 않았다. 전신의 70% 이상이 화마에 그을리는 동안 아이를 놓지 않았던 어린 엄마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보육원, 도망간 남편, 짧은 생을 불구덩이에서만 살아왔던 그녀가 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소림의 냄새가 배어있는 하늘색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가 살았더라면 모자가 계속 걸었을 불길 속에 낸 길을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어린이집에 들렀을 그녀, 그런 그녀를 향해 “엄마” 하며 달려왔을 아이. 집으로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공 뽑기를 하는 두 사람. 원하는 게 나오지 않아 울먹이는 아이, 그런 아이를 달래는 엄마. 둘이 함께 먹는 저녁, 목욕, 치카치카, 나란히 엎드려 그림책 읽다 자기. 아침이면 등원 준비로 소란했을 집안 공기, 같은 것들, 내가 이어갈 길을.

2015년 1월 10일 발생한 경기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현장.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포함해 3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 (연합뉴스)
2015년 1월 10일 발생한 경기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현장.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포함해 3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 (연합뉴스)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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